내호아(來護兒, 생년 미상 ~ 618년)는 중국 수(隋)나라의 군인·무장이다. 자(字)는 숭선(崇善)으로, 강도(江都) 출신이다. 한자 표기는 간체자로 来护儿, 정체자로 來護兒, 병음은 lái hù Ní이다.
가문과 초기 생애
내호아는 진(陳)나라 해릉현령(海陵縣令)을 지낸 내법민(來法敏)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후한(後漢)의 중랑장(中郞將) 내흡(來歙)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백모인 오씨가 양육하였다. 성장한 뒤에는 백부의 원수인 도무자(陶武子)를 살해하고 그 목을 백부의 무덤에 바쳤다고 하며, 이후 장강(長江) 유역의 백토촌(白土村)에 정착하였다.
주요 활약
581년 하약필(賀若弼)이 광릉(廣陵)에 주둔했을 때 내호아는 그 휘하에서 활약하여 대도독(大都督)에 임명되었다. 진나라가 멸망한 뒤인 590년 옛 진나라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행군총관 양소(楊素)를 따라 자총관(子總管)으로 참전하여 고지혜(高智慧) 등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수양제(煬帝) 즉위 후 내호아는 우효위대장군(右驍衛大將軍)에 임명되어 고구려 원정에 참여하였다. 612년 제1차 고구려-수 전쟁 당시 평양도해군총관(平壤道行軍總管)으로서 수군을 이끌고 해로를 통해 대동강 하구에 상륙하여 평양에서 60리 지점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나 고구려 영양왕의 동생 고건무(高建武)가 이끄는 군대의 유인 작전에 걸려 평양성 아래까지 접근했다가 큰 패배를 겪었다.
613년 제2차 원정에도 참전했으나, 양현감(楊玄感)의 반란이 일어나자 회군하여 우문술(宇文述)과 함께 이를 토벌하고 영국공(榮國公)에 봉해졌다. 614년 제3차 원정에서는 수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요동반도에 상륙해 비사성(卑沙城)을 함락시키고 방어하던 고구려군 1천여 명을 격멸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고구려가 곡사정(斛斯政)의 신병을 돌려보내는 조건으로 화의를 청하자, 수양제는 이를 받아들이고 철수를 명령했으나 내호아는 전쟁의 계속을 주장하다가 다른 장수들의 반대로 철수했다.
617년에는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 및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올랐다. 618년 장안에서 우문화급(宇文化及)이 반란을 일으켜 수양제를 시해할 때, 내호아도 함께 살해되었다.
가족 관계
내호아에게는 총 12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 중 이름이 기록에 남은 것은 6명이다. 장남은 내해(來楷)이며, 5남 내홍(來弘), 6남 내정(來整) 등이 알려져 있다. 어린 아들 내항(來恒)과 내제(來濟)는 우문화급의 난에서 살아남아 이후 당(唐)나라에서 관직을 맡았다.
사료상의 비중
내호아는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에 수군 대장으로 세 차례 모두 참전한 인물로, 특히 《삼국사기》 및 한국 고대 사료 데이터베이스 등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고구려-수 전쟁의 전개 과정과 수군 작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대중매체에서는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배우 정명환이 연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