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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야 제갈씨

낭야 제갈씨(琅邪諸葛氏 / 琅琊諸葛氏)는 중국의 대표적인 복성(複姓) 가문으로, 고대 중국 산동성(山東省) 일대의 낭야군(琅琊郡)을 본관으로 삼았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인물을 배출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기원 및 연혁

낭야 제갈씨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에 기록이 전해진다. 《삼국지》 배송지(裴松之) 주석에 인용된 기록에 따르면, 제갈씨의 선조는 원래 갈씨(葛氏)였다. 진(秦)나라 말기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에 가담한 장군 갈영(葛嬰)의 후손이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 공적을 인정받아 제현후(諸縣侯)에 봉해졌다. 제현(諸縣)은 당시 낭야군에 속한 지역이었다. 이후 여러 대가 지나 그 일족이 제현에서 양도(陽都)로 옮겨갔는데, 양도에는 원래부터 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에 양도의 사람들이 이들을 구별하기 위해 '제현(諸縣)에서 온 갈씨'라는 의미로 '제갈(諸葛)'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성씨로 굳어졌다고 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주요 인물

낭야 제갈씨는 후한 말기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가장 번성하였다. 주요 인물로는 다음과 같은 이들이 있다.

  • 제갈규(諸葛珪): 후한 말 태산군승(泰山郡丞)을 지냈다. 제갈근, 제갈량, 제갈균 형제의 아버지이다.
  • 제갈근(諸葛瑾, 174~241): 제갈규의 장남.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대신으로 손권(孫權)을 섬겼다.
  • 제갈량(諸葛亮, 181~234): 제갈규의 차남. 자는 공명(孔明). 촉한의 승상이자 군사 전략가로, 유비(劉備)의 삼고초려(三顧草廬)로 등용되어 촉한 건국에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출사표(出師表)를 남겼으며, 북벌 중 오장원(五丈原)에서病死하였다. 시호는 충무(忠武).
  • 제갈균(諸葛均): 제갈규의 삼남. 촉한에서 벼슬을 지냈다.
  • 제갈탄(諸葛誕, ?~258): 조위(曹魏)의 정치인. 제갈량과 같은 낭야군 출신의 동향 친족으로, 위나라에서 벼슬하다가 사마씨(司馬氏)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전사하였다.
  • 제갈첨(諸葛瞻, 227~263): 제갈량의 아들. 촉한의 부마(駙馬)이자 위장군(衛將軍)으로, 촉한 멸망 당시 전사하였다.
  • 제갈경(諸葛京): 제갈첨의 차남. 촉한 멸망 후 진(晉)나라에서 강주자사(江州刺史)를 지냈다.

한국 제갈씨와의 관계

한국의 남양 제갈씨(南陽 諸葛氏)는 낭야 제갈씨와 혈통적 연원이 같다고 전해진다. 한국 제갈씨는 제갈규의 5세손인 제갈충(諸葛忠)이 신라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 시기에 신라로 망명하여 정착한 것을 시초로 본다. 이후 후손들이 중국으로 돌아갔다가, 제갈규의 20세손 제갈공순(諸葛公巡)이 신라 흥덕왕(興德王) 재위 시기(826~836)에 다시 신라로 귀화하여 한국 제갈씨의 중시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구체적인 계보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異說)이 존재하며, 일부 내용은 족보 기록에 의존하고 있어 정확한 역사적 검증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참고 문헌

  • 《삼국지(三國志)》 권28, 권35, 권52, 권64
  • 《삼국지주(三國志注)》
  • 《세설신어(世說新語)》
  • 《진서(晉書)》
  • 《양양기구기(襄陽耆舊記)》
  • 《수서(隋書)》 권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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