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해 전 선원사지(南海 傳 仙源寺址)는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선원마을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건물터 유적이다. '전(傳)' 자는 '전해지는' 또는 '추정되는'이라는 의미로, 이곳이 선원사(仙源寺)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전승되어 오는 터임을 나타낸다. 2017년 3월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위치 및 명칭
유적은 남해군 고현면 선원마을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이름을 따라 '전 선원사지'라 불린다. 인근에는 같은 시기 조성된 백련암지(白蓮庵址)가 뒷산에 위치해 있다.
역사적 배경
남해 전 선원사지는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 판각과 관련된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려대장경 종경록(宗鏡錄) 권27에는 '정미세 고려국 분사 남해 대장도감(丁未歲 高麗國 分司 南海 大藏都監)'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남해 지역에 대장경 판각을 담당하던 '남해대장도감'이 설치되었음을 시사한다. 남해군 고현면 일대에서 여러 차례 지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전 선원사지, 백련암지, 안타골 유적, 전 관당성지, 전 망덕사지 등이 고려대장경 판각 시기에 존속했던 유적임이 밝혀졌다.
유적 구조
전 선원사지는 구릉 기슭의 경사진 땅을 4단으로 경계를 조성한 뒤 건물을 세운 구조이다. 유적지 내에서는 총 17동의 건물터와 후원, 연못 등의 시설물이 확인되었다. 건물의 배치 구조와 규모로 볼 때, 이곳은 고려시대 상류층이 기거하던 귀족의 별서(別墅)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별서는 고려시대 귀족이 휴양을 위해 본가 외에 별도로 마련한 건물을 의미한다.
출토 유물
발굴 조사 과정에서 고려 문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원숭이 모양 청자 연적(청자원숭이모양연적)과 함께 12~13세기경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은병명문와(銀甁銘文瓦)이다. 이 기와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은병(銀甁)'을 시주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는데, 은병은 고려시대 국가 간 거래나 왕실·중앙 관료(귀족)들이 사용한 고액 화폐로, 문헌 기록에만 존재하다가 유물로는 남해에서 처음 확인되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학계 추정
학계에서는 전 선원사지와 백련암지의 연관성, 건물지의 성격, 출토 유물 등을 종합하여, 전 선원사지가 고려대장경 판각 책임자였던 재상 정안(鄭晏)이라는 인물이 남해로 퇴거해 자신의 별서를 희사하여 창건한 '정림사(定林寺)'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일연(一然) 스님의 비문인 '인각사보각국사비문'에는 "기유년(1249년)에 재상 정안이 남해의 집을 희사하여 사(寺)로 삼아 정림이라 하고 스님을 초빙해 주관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일연 스님은 1249년부터 1261년까지 12년간 남해에 거주하며 대장경 판각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전 선원사지가 정림사임을 확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확보되지 않아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태이다.
지정 현황
남해 전 선원사지는 고려대장경 판각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유적으로 평가받아, 2017년 3월 백련암지와 함께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