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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보원

남전보원(南泉普願, 748년 ~ 834년)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승(禪僧)으로, 조사선(祖師禪)의 개조인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제자이다. 속성은 왕(王)씨이며, 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 신정현(新鄭縣) 출생이다. 한자 표기인 南泉普願을 그대로 읽으면 '남천보원'이 되나, 한국 불교계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전보원'으로 읽고 부른다.

생애

757년(10세)에 대외산(大磐山)의 대혜(大慧)에게 출가하여 수업을 쌓았고, 777년(30세)에 숭산 회선사(會善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계율과 경전, 특히 용수보살의 삼론(三論: 百論·中論·十二門論)을 익히며 불법을 공부하다가 마조도일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 795년(47세)부터는 안휘성(安徽省) 지양(池陽)의 남전산(南泉山)에 들어가 30년간 은둔 수행하였고, 827년(79세)에 지양 선성(宣城)의 겸사(廉使) 육선(陸亘)의 간청으로 하산하여 선풍을 펼쳤다. 834년 12월 15일, 세수 87세, 승랍 58세로 입적하였다.

사상과 가풍

남전보원은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즉 평상심이 곧 도(道)라는 가르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자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을 중시하는 선사상이다. 마조도일이 '즉심시불(卽心是佛)'을 설한 이후 제자들이 이를 교조화하는 폐단이 생기자, 남전은 '마음이 부처가 아니요, 지혜가 도가 아니다(心不是佛 智不是道)'라고 설파하며 집착을 타파하였다.

그의 선풍은 무심(無心)의 극한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으며, 언어와 논리를 초월한 직관적 깨달음을 중시하였다. 마조도일이 제자들과 달맞이를 하던 중 "지금 같은 때에 무엇을 하면 가장 좋겠는가"라고 묻자, 서당지장은 "공양", 백장회해는 "수행"이라고 답한 반면, 남전은 소매를 뿌리치고 그냥 가버렸다. 이에 마조는 "경(經)은 서당에게 들어가고, 선(禪)은 백장에게 돌아가는데, 오직 남전만이 경계에서 벗어났구나"라고 평하였다.

일화

  • 남전참묘(南泉斬猫): 동당과 서당의 승려들이 고양이를 두고 다투자, 남전이 고양이를 잡아 "한마디 이르면 살리고, 이르지 못하면 목을 베리라"고 하였으나 대중이 대답하지 못하자 고양이의 목을 베었다. 이후 외출에서 돌아온 제자 조주종심(趙州從諗)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자, 조주는 신발을 벗어 머리에 이고 나갔다. 이에 남전은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화는 선종의 대표적 공안(公案)으로 전해진다.

  • 이류중행(異類中行): 남전은 입적을 앞두고 제자에게 "산 아래로 가서 한 마리 검은 암소(水牯牛)가 되겠다"고 말하였다. 이는 깨달음의 경지에 안주하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겠다는 대비심(大悲心)의 발로로 해석된다.

제자와 영향

남전보원의 문하에는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으며, 대표적인 제자로는 조주종심(趙州從諗, 778~897), 장사경잠(長沙景岑), 자호이종(子湖利蹤) 등이 있다. 특히 조주종심은 '무(無)'자 화두와 '뜰 앞의 잣나무' 등으로 유명한 선사이다. 또한 신라의 승려 도윤(道允)도 남전의 제자였으며, 귀국 후 사자산문(獅子山門)을 개창하여 한국 선불교에 영향을 미쳤다.

남전의 선사상은 이후 임제종(臨濟宗)과 조동종(曹洞宗) 등 선종 제파에 두루 영향을 끼쳤으며, '평상심시도'는 조사선 시대의 핵심 사상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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