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男爵)은 귀족의 작위(爵位) 가운데 하나로, 동아시아의 오등작(五等爵) 체계에서는 공작·후작·백작·자작에 이어 가장 낮은 서열의 작위를 가리킨다. 한자문화권에서 '남(男)'이라는 글자는 갑골문 시기부터 세력가의 칭호로 사용된 흔적이 확인되며, 주나라 시기에는 허나라와 여융(驪戎)의 임금이 '남'으로 불렸던 기록이 남아 있다. 《맹자》 만장 하편에서는 제후 가운데 최하위로 자(子)와 동격으로 정의하기도 하였다.
동아시아에서 실제 작위 제도로 남작이 사용된 것은 왕망(王莽)이 오등작을 도입한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후한에서 폐지되었다가 삼국시대 위나라 말기에 사마씨 정권이 오등작을 재도입하면서 보편화되었다. 다만 이 시기의 작위들은 실제 영지를 다스리는 제후에게 수여된 것이 아니라 공적이나 서열에 따라 수여된 명예적 칭호에 가까운 성격을 지녔다.
유럽에서 남작에 해당하는 작위는 영어의 Baron, 독일어의 Freiherr 등으로 표현된다. 영어 'Baron'의 어원은 프랑크어에서 "자유로운 영주" 또는 "전사"를 의미하는 'Baro'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독일어 'Freiherr' 역시 "자유 영주"라는 뜻을 지닌다. 중세 유럽에서 'Baron'이라는 용어는 현대의 의미와 달리 군주의 직속 봉신을 폭넓게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공작이나 백작 등 상위 작위를 가진 인물들도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특히 두드러졌는데, 의회 참여 자격이 있는 이들을 싸잡아 남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중세 후기로 접어들면서 남작은 점차 봉건 영지와의 관련성이 약해지고, 근세에 이르러 지역사회 내에서 공직을 수행하는 하급 귀족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굳어졌다. 근대에는 부르주아 계층의 유력 인사들이 남작 작위를 받는 사례가 늘어났으며, 영국에서는 국가유공자나 고위 정치인·관료 출신 민간인에게 남작 작위를 수여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영국에서 남작 본인에 대한 경칭은 'The Right Honourable'이며, 자녀에 대한 경칭은 'The Honourable'이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화족(華族) 제도가 성립되면서 남작이 화족 신분 중 제5등위 계급으로 설정되었다. 수여 기준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화족이 된 자, 류큐 왕가의 방계 왕족, 주요 신사의 신직을 세습해 온 가문, 국가에 훈공이 있는 자 등이 포함되었다. 대한민국은 작위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훈장(勳章)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사에서도 남작 작위가 사용된 사례가 확인된다. 발해 시기에는 개국남(開國男) 작위를 받은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 시대에는 강감찬이 천수현개국남(天水縣開國男)에 봉해졌다가 이후 후작으로 승작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