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호(南榮號)는 대한민국의 여객선으로, 1970년 12월 15일 침몰 사고로 널리 알려진 선박이다. 이 선박은 남영해운(남양상선) 소속이었으며, 1967년 12월 경남조선회사에서 제작되었다. 길이 43m, 폭 7.2m, 362톤급이었으며, 1,400마력에 15노트의 속력을 낼 수 있었다. 1968년 3월 5일부터 부산과 제주 사이를 오가는 정기여객선으로 운항을 시작하였다. 승객 정원은 295명(1등 20명, 2등 38명, 3등 237명), 선원은 19명이었다.
1970년 12월 14일 오후 5시경, 남영호는 제주도 서귀항(현 서귀포시)에서 승객 158명과 화물 150톤을 싣고 부산을 향해 출항하였다. 이후 성산포항에 기항하여 승객 98명을 추가로 태우고 같은 날 오후 9시 40분경 부산을 향해 다시 출항하였다. 그러나 실제 탑승 인원은 338명, 화물은 540톤을 넘어서 적재 정량을 크게 초과한 상태였다. 이로 인해 남영호는 성산포항을 떠난 시점에서 이미 좌현으로 약 10도가량 기울어져 있었다.
다음 날인 12월 15일 새벽 1시 15분경, 남영호는 전라남도 여수시 상백도 동남쪽 해상(거문도 동쪽 해상)에서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약 10분 만에 전복·침몰하였다. 침몰 당시 남영호에서는 비상주파수로 여러 차례 구조신호(SOS)를 타전하였으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구조 작업이 지연되면서 생존자는 총 12명에 그쳤고, 사망자는 326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해상 참사 중에서도 큰 규모의 인명 피해로 기록되었다.
사고 원인으로는 적재량을 초과한 과적, 화물의 편중 적재, 항해 부주의, 구조 신호에 대한 신속하지 못한 대처 등이 지적되었다. 특히 화물이 적재 정량의 약 4배에 달했고, 승객도 정원을 초과 탑승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사고 현장이 급조류 수역이었고, 선체의 복원력 부족 문제가 있었던 점도 원인으로 언급되었다. 이후 경찰·검찰·국회 조사에서 과적과 당국의 감독 소홀이 주요 원인으로 결론지어졌으며, 이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평가된다.
사고 이후 1971년 재판에서 선장은 금고 3년, 선주는 금고 6개월에 벌금 3만 원이 선고되었고, 1972년 대법원 상고심에서 선장의 형이 금고 2년 6개월로 확정되었다. 또한 이 사고를 계기로 12월 15일 여객선 운항관리제도가 도입되었다. 사고 당시 구조 신호가 수신되었음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해경의 부실 대응과, 사고를 알고도 구조하지 않은 한국 어선의 행태 등도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남영호는 이 침몰 사고로 인해 대한민국 해양 안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선박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