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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자고성

남성자고성(南城子古城)은 중국 동북 지역에 여러 곳 존재하는 고대 성터(古城)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남성자(南城子)'는 중국 동북 지역에서 성터의 위치가 '남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으로, 서로 다른 지역에 동명(同名)의 성터가 여러 개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헤이룽장성(黑龙江省) 목단강시(牡丹江市)의 성터와 지린성(吉林省) 지린시(吉林市)의 성터가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헤이룽장성 목단강시 남성자고성

헤이룽장성(黑龙江省) 목단강시(牡丹江市) 교외의 화림진(桦林镇) 남성자촌 남쪽에 남아 있는 성터로, 발해(渤海) 세력이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전진기지로 사용한 성으로 추정된다. 성터의 북쪽으로는 반위엔허(반원하) 강과 약 3km 거리를 두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러러허 강과 인접하여 흘러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은 남쪽으로 약간 길쭉한 장방형을 이루며, 성벽의 대부분이 도로로 이용되면서 파괴되었으나 남벽과 서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성의 둘레는 약 2,060m이고, 남북 길이 580m, 동서 너비 450m 정도이다. 대부분의 성벽은 흙을 판축(版築)하여 쌓았으며, 일부는 돌과 흙을 섞어 쌓은 곳도 있다. 성 내부는 모두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1986년 헤이룽장성 문물(文物)로 지정되었다.

지린성 지린시 남성자고성 (동단산평지성)

지린성(吉林省) 지린시(吉林市) 강남향(江南鄕) 유민촌에 위치한 평지성(平地城)으로, 동단산(東團山)의 동남쪽 산자락 평지에 황토로 축조되었다. '동단산평지성'(東團山平地城) 또는 '동단산 평지성'이라고도 불린다. 성벽은 원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동남쪽 부분이 현존 높이 5~6m, 윗부분 너비 약 1m로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서쪽은 성벽 없이 동단산 자체가 성벽을 대신한다. 남문과 북문이 있으며, 성 밖에는 해자(垓子)의 흔적도 발견된다.

이 성터는 원시·한(漢)·고구려·발해·요(遼)·금(金) 시기에 걸쳐 연용되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부 연구에서는 부여 전기 왕성(王城)의 평지성으로 추정하기도 하며, 발해 시기에는 관아 건축이 있었던 곳으로도 해석된다.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길림성 문물고고연구소 등에 의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한·위(漢·魏) 시기의 문화층과 각종 유물이 확인되었다.

기타 남성자고성

이 외에도 중국 동북 지역에는 동명의 성터가 더 존재한다. 예컨대 랴오닝성(遼寧省) 지역에 위치한 '동랴오 남성자고성'(東遼南城子古城)이 있으며, 국립문화유산연구원(구 문화재연구소)의 관련 자료에 수록된 바 있다. 이처럼 '남성자고성'이라는 명칭은 특정한 단일 유적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동북부 여러 지역의 성터에 공통적으로 부여된 명칭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남성자고성은 고구려·부여·발해 등 고대 한반도 및 만주 지역 세력들의 성곽 축조 방식과 세력 확장 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된다. 다만 각 유적의 정확한 축조 연대와 축성 주체에 대해서는 학계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발해 성터로 확정된 헤이룽장성 목단강시의 유적 외에는 일부 성터의 성격에 대한 해석이 추가적인 고증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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