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할린 침공(러시아어: Южно-Сахалинская операция, 일본어: 樺太の戦い)은 1945년 8월 11일부터 8월 25일(또는 8월 26일)까지 소련군이 일본 제국이 통치하던 사할린섬 남부(일본명 가라후토)를 침공하여 점령한 군사 작전이다. 이 전투는 소련-일본 전쟁의 일부이자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역의 마지막 전투 중 하나이다.
배경
1905년 러일전쟁 종전 후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사할린섬은 북위 50도선을 기준으로 분할되어, 이북은 러시아 제국이, 이남은 일본 제국이 통치하게 되었다. 일본은 이 지역을 가라후토 청(樺太庁)으로 편제하였으며, 1943년에는 일본 본토(내지)로 편입하였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독일 항복 후 2~3개월 내에 일본에 대해 전쟁을 선포할 것을 약속하였고, 그 대가로 쿠릴 열도와 남사할린을 소련 영토로 인정받기로 합의하였다. 1945년 8월 8일 소련은 소련-일본 중립 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선전포고하였으며, 8월 9일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을 개시하였다. 남사할린 침공은 이와 연계된 작전이었다.
전투 서열
소련군은 제2극동전선군(막심 푸르카예프 육군원수) 산하 제16군(레온티 체레미소프 중장)이 주축이 되었다. 제56소총병군단(제79소총병사단, 제2·제5·제113·제214소총병여단, 제214전차여단), 북태평양 함대(블라디미르 안드레예프 중장), 태평양 함대 항공대(약 80기) 등 약 10만 명의 병력이 동원되었다.
일본군은 제5방면군(히구치 기이치로 중장) 산하 제88사단(미네키 도이치로 중장)이 남사할린 전체의 방어를 담당하였다. 장비와 훈련 수준이 열악했으며, 해상 및 항공 전력의 지원은 거의 받지 못했다.
전투 경과
1945년 8월 11일, 소련군은 북위 50도선 국경에서 포격과 함께 침공을 개시하였다. 일본군 제88사단은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고톤(카라미토게) 요새 지역 등에서 완강히 저항하여 소련군의 진격을 일시적으로 지연시켰다.
8월 15일 일본 천황의 항복 선언(옥음방송) 이후에도 일본 제5방면군은 제88사단에 전투 지속을 명령하였다. 8월 16일 소련 해군은 남사할린 서부 토로(현 샤흐퇴르스크)에 상륙 작전을 개시하였고, 8월 19~20일에는 마오카(현 홀름스크)에 상륙하여 항구를 점령하였다.
소련군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진격을 계속하였고, 8월 25일 오도마리(현 코르사코프)와 도요하라(현 유즈노사할린스크)를 점령하였다. 8월 26일(또는 8월 25일) 일본군 제88사단이 공식 항복함으로써 전투가 종결되었다.
결과
소련은 1905년 포츠머스 조약 이후 상실했던 남사할린을 40년 만에 수복하였고, 이후 쿠릴 열도 상륙 작전을 통해 쿠릴 열도 전역을 점령하였다. 남사할린은 현재까지 러시아 연방의 영토(사할린 주)로 남아 있다.
일본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사할린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으며, 현재까지 남사할린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전투 과정에서 일본군은 약 700~2,000명이 전사하고 약 18,000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소련군은 약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일본인과 한인을 포함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나, 구체적인 규모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