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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찬

남궁찬(南宮璨)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함열(咸悅)이고, 자는 여헌(汝獻), 호는 창랑(滄浪)이다. 할아버지는 군수 남궁치(南宮致)이고, 아버지는 생원 남궁순(南宮順)이며, 어머니는 감찰 최돈(崔敦)의 딸이다.

1477년(성종 8)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하였고, 1489년(성종 20)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에 보임되었다. 같은 해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왕명을 어긴 죄로 추국(推鞫)을 받기도 하였다. 1493년(성종 24) 이조좌랑(吏曹佐郞)을 역임하였고, 1495년(연산군 1)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과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를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 문신(文臣)의 정시(庭試)에서 수석을 차지하였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향표리(鄕表裏)를 하사받았다. 1498년 홍문관부응교가 되었고, 1499년 봉정대부(奉正大夫)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지제교(知製敎) 겸 승문원교감(承文院校勘)으로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0년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제주목사(濟州牧使)에 부임하였고, 1504년(연산군 10) 강원도관찰사(江原道監司)가 되었다. 외방에 나가 있었으나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유배되었으며, 1506년(중종 1) 중종이 갑자사화 때 죄 없이 귀양 가서 죽은 인물로 언급한 기록이 있다. 벼슬은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

부인은 평산 신씨(平山申氏) 신자승(申自繩)의 딸이며, 아들로 남궁익(南宮翼, 현감)과 남궁숙(南宮淑, 관찰사)이 있다. 손자는 형조참판을 지낸 남궁침(南宮忱, 1513~1573)이다. 묘는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 목사동길 48에 있으며, 남궁찬묘석상(南宮璨墓石像)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76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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