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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공주

남강공주(南康公主)는 중국 역사에서 서로 다른 시대에 존재한 두 명의 공주를 가리키는 칭호이다. "남강"(南康)은 봉호(封號)로 사용된 지명으로, 두 인물 모두 이 지역의 이름을 따 공주에 봉해졌다.

1. 동진(東晉)의 남강공주

동진(東晉) 제2대 황제인 명제(明帝) 사마소(司馬昭)의 딸이다. 이름은 사마흥남(司馬興男)으로 알려져 있다. 동진의 권신이자 명장인 환온(桓溫, 312~373)에게 하가하여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었다. 환온은 성한(成漢) 정벌과 수차례 북벌을 수행하며 막강한 권력을 장악한 인물로, 이후 간문제(簡文帝)를 옹립하고 황위 찬탈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세설신어(世說新語)〈현원편(賢媛篇)〉》에는 남강공주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전한다. 환온이 성한을 정벌한 후, 성한의 마지막 군주 이세(李勢)의 여동생을 첩으로 삼아 총애하자, 남강공주가 이 사실을 알고 수십 명의 여종을 이끌고 칼을 들고 그녀를 습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씨가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무너져 무심히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죽임을 당하면 오히려 태어나는 해와 같겠지요"라고 말하며 단정하고 당당하게 대응하자, 남강공주는 칼을 던지고 그녀를 껴안으며 "나도 너를 보니 가엾은데 하물며 저 늙은 영감이랴(我見汝亦憐, 何況老奴)"라고 말하고 오히려 잘 대해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고사는 "남강유련(南康猶憐)"이라는 성어로도 알려져 있다.

2. 명나라(明)의 남강공주

명나라의 초대 황제인 태조 주원장(朱元璋, 홍무제)의 10녀로, 1373년(홍무 6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임씨(林氏)이다. 1387년(홍무 21년)에 남강공주(南康公主)로 봉해졌고, 동천후(東川侯) 호해(胡海)의 아들 호관(胡觀)에게 하가하였다. 이후 영락(永樂) 연간에 남강장공주(南康長公主), 홍희(洪熙) 연간에는 남강대장공주(南康大長公主)로 진봉되었다.

배우자 호관은 건문 3년(1401년)에 이경륭(李景隆)을 따라 연왕 주체(燕王 朱棣, 후의 영락제) 정벌에 나섰다가 오히려 연왕 군에 붙잡혔다. 영락제 즉위 후 한때 용서받았으나, 후에 비행(잘못)으로 탄핵되어 파면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강공주는 1438년(정통 3년) 11월 15일에 6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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