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징 전범 재판소(南京戰犯裁判所)는 1946년 2월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중일 전쟁 기간 중 일본 제국 육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재판하기 위해 난징(南京)에 설립한 군사 법정이다. 정식 명칭은 '국방부 심판 전범 군사 법정'(國防部審判戰犯軍事法庭)이며, 약칭으로 '난징 군사 법정'(南京軍事法庭)이라고도 불린다.
국민정부는 전후 처리의 일환으로 중국 전역의 10개 도시(베이징, 난징, 선양, 쉬저우, 지난, 타이베이 등)에 전범 재판소를 설치하였으며, 난징 전범 재판소는 그중 하나였다. 이 재판소는 처음에는 중국 육군 총사령부 소속이었으나, 1946년 7월 1일 이후 국방부로 이관되어 '국방부 심판 전범 군사 법정'으로 개편되었으며, 국방부 군법국의 지휘와 감독을 받았다. 재판장은 스메이위(石美瑜)가 맡았고, 5명의 심판관과 2명의 검찰관으로 구성되었다. 법정 소재지는 난징시 중산둥로(中山東路) 307번지에 위치한 리즈서(勵志社) 본부 대강당이었다.
이 재판소는 주로 난징 대학살(南京大虐殺)을 비롯한 일본군의 전쟁 범죄를 심판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주요 피고인으로는 난징 대학살의 주범 중 하나인 다니 히사오(谷壽夫) 중장, 이소가이 렌스케(磯谷廉介) 장군, 중대장 다나카 군키치(田中軍吉), 이른바 '100인 참수 경쟁'으로 알려진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중위와 노다 쓰요시(野田毅) 등이 포함되었다. 재판소는 이들 중 다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으며, 이는 난징 우화타이(雨花台) 형장에서 집행되었다.
한편,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 대장은 1948년 7월 이 재판소에서 전쟁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당시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蔣介石)의 개인 명령에 의해 즉시 보호를 받았고 이후 국민당의 군사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이 재판소는 극동 국제 군사 재판(도쿄 재판)과는 별개로, 중국 국민정부가 자체적으로 운영한 전범 재판 기구로서 전후 일본군 전범 처리의 한 축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