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부 시게노부(南部重信, 1616년 6월 28일~1702년 7월 12일)는 일본 에도 시대 전기에서 중기에 걸쳐 활동한 다이묘(大名)로, 육오국(陸奥国) 모리오카번(盛岡藩)의 제3대 번주이자 난부 씨(南部氏) 제29대 당주이다.
난부 시게노부는 초대 번주인 난부 도시나오(南部利直)의 다섯째 아들로, 시모헤이 군(下閉伊郡) 하나와 촌(花輪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하나와 마사토모(花輪政朝)의 딸 마쓰(松)로 알려져 있으며, 일설에 따르면 헤이 씨(閉伊氏) 출신이라는 기록도 있다. 어릴 적 이름은 히코로쿠로(彦六郎)였고, 별명으로 오토마쓰(乙松), 나베마쓰마루(鍋松丸) 등이 있었다.
초명은 하나와 시게마사(花輪重政)였으나, 1648년 난부 씨의 지성(支城)이었던 시치노헤 성(七戸城)의 성주가 되면서 시치노헤 가문을 계승하여 시치노헤 시게노부(七戸重信)라 불렸고, 시치노헤 하야토(七戸隼人)라는 통칭을 사용하였다.
1664년, 형인 제2대 번주 난부 시게나오(南部重直)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채 사망하자, 막부의 명에 따라 모리오카번의 번주로 취임하였다. 이때 모리오카번의 영지는 종래 10만 석에서 8만 석으로 감편되었고, 나머지 2만 석은 동생인 나카사토 나오요시(中里直好)에게 분할되어 하치노헤번(八戸藩)이 설치되었다. 이후 1683년에 정4위하(正四位下)로 승진하면서 모리오카번의 고쿠다카(石高)는 다시 10만 석으로 회복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난부 시게노부는 신전 개발(新田開発)을 통한 농지 확대, 동광(銅鑛) 개발을 통한 재정 확충, 북상강(北上川) 유역의 치수 사업 등 다양한 공공사업을 추진하였다. 그의 치세는 비교적 평화롭고 번영한 시기로 평가된다.
1680년, 제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徳川家綱)가 후계자 없이 사망한 뒤, 이에쓰나의 조카 쓰나토요(綱豊)와 동생 쓰나요시(綱吉)가 제5대 쇼군 후보로 경합하였을 때, 난부 시게노부는 쓰나요시를 적극 지지하여 그가 쇼군으로 취임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공으로 관위가 승격되고 고산케(御三家)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692년, 장남 유키노부(行信)에게 번주직을 양위하고 은거하였다. 이후 1702년 에도(江戸)에 있는 저택에서 8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유해는 모리오카의 쇼주지(正寿寺)에 안치되었다.
난부 시게노부는 지방민들 사이에서 "하나와도노사마(花輪殿様)"로 불리며 친근하게 여겨졌던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