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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건정

낙건정(樂健亭)은 조선 시대의 정자(亭子) 명칭으로, 현재까지 확인되는 사례로는 경기도 고양시와 충청북도 청주시에 각각 존재한 정자가 있다. 두 낙건정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인물들에 의해 건립된 별개의 건축물이다. 이름의 '낙건'(樂健)은 "즐겁고 건강함"을 뜻하는 한자어로, 모두 이 의미를 공유한다.

경기도 고양시 낙건정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의 덕양산 끝자락 절벽 위, 행호(杏湖) 강변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정자이다. 1721년 조선 후기의 문신 김동필(金東弼, 1678~1737)이 벼슬에서 물러나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 지은 별서(別墅)로 알려져 있다. 김동필은 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등 6조 판서를 두루 역임한 인물로, 낙건정을 지을 당시에는 시강원 보덕으로 재직 중이었다. 정계에서 좌천된 뒤 행주에 은거처를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낙건정'이라는 이름은 송나라 대학자 구양수(歐陽修)의 《사영시(思潁詩)》 중 "몸이 건강해야 비로소 즐겁게 되니, 늙고 병들어 부축하기를 기다리지 말라"(及身強健始爲樂 莫待衰病須扶携)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동필은 구양수가 이 시를 지을 때가 44세였는데, 자신도 낙건정을 지을 때 44세였던 점에 착안하여 구양수를 본보기로 삼았다고 한다.

검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이 그린 <낙건정도>(1742)와 <행호관어도>(1741)에 이 정자가 묘사되어 있으며, 이 그림들은 《양천팔경첩》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또한 김동필과 동문수학한 문장가 이덕수(李德壽)가 쓴 <낙건정기>가 있다.

낙건정은 대를 이어 오랫동안 보존되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손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행주성당의 류봉구 신부가 남은 자재를 행주외동 194번지로 옮겨 집을 지었으며, 이 건물은 2003년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그 원형은 남아 있지 않으나, 옛 터의 위치와 형세는 역사 기록과 정선의 그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낙건정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연제리에 있으며, 2015년 4월 17일 청주시 향토유적 제78호로 지정되었다.

1926년 박준학(朴準學), 박영래(朴泳來) 등 기로회(耆老會) 회원 45인이 강외면 연제리 돌다리방죽 옆에 세운 정자이다. 조선 후기에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이 시사(詩社)로 조직하였던 백련사(白蓮社)의 상부상조와 예속상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의 정변을 겪은 후 지역 유지 45인이 난국계(亂國契)를 조직하고 그 모임의 장소로 건립한 것이다.

정자의 이름은 백련사 시절에는 약정(約亭), 난국계 결성 시에는 난국정(亂國亭)이라 하였고, 1926년 퇴락한 정자를 중수하면서 낙건정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존하는 건물은 1954년, 1983년, 1990년에 보수된 것으로, 정면 2칸·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정자 내부에는 1926년 김종한(金宗漢)이 쓴 '낙건정' 현판과 그가 지은 <낙건정기>, 김영훈·박익래가 지은 <낙건정기>, 1954년 이석영이 지은 <낙건정중기> 등 기문 4개와 제영 4수가 걸려 있으며, 정자 앞에는 1983년 박영순이 지은 <낙건정중수기비>가 세워져 있다. 현재는 난국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특징

두 낙건정 모두 '몸을 건강하게 하여 즐겁게 산다'는 뜻의 '낙건(樂健)'이라는 한자 명칭을 공유한다. 이는 조선 후기 사대부들이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유유자적하며 자연 속에서 은거하던 누정(樓亭) 문화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특히 고양 낙건정은 겸재 정선의 그림에 등장하고, 청주 낙건정은 지역 공동체 조직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각각 그 역사적 의미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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