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왕국(1806년~1815년)은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프랑스 제1제국의 영향 아래 이탈리아 남부에 성립되었던 위성 왕국이다. 정식 명칭은 나폴리 왕국(이탈리아어: Regno di Napoli, 프랑스어: Royaume de Naples)으로, 1806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부르봉 왕조를 폐위시키고 자신의 형제이자 측근인 주아생 뮈라를 왕으로 앉히면서 시작되어, 1815년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부르봉 왕정이 복고되면서 소멸하였다.
역사적 배경과 성립 1805년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패한 뒤, 나폴레옹은 1806년 2월 페르디난도 4세(시칠리아의 페르디난도 3세)가 통치하던 나폴리 왕국을 침공하였다. 나폴레옹은 1806년 3월 30일 "나폴리의 부르봉 왕가는 왕위를 상실했다"고 선포하고, 자신의 형제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나폴리 국왕(조제프 나폴레옹 1세)으로 임명하였다.
통치 시기 구분 나폴레옹 치하 나폴리 왕국은 두 명의 국왕 시기로 구분된다.
- 조제프 보나파르트 시기 (1806년~1808년): 조제프는 봉건제 폐지, 수도원 해산, 사법 제도 개편, 나폴레옹 법전 도입 등 프랑스식 근대화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1808년 나폴레옹이 조제프를 스페인 국왕으로 전보시키면서 나폴리 왕위를 비우게 되었다.
- 주아생 뮈라 시기 (1808년~1815년): 나폴레옹의 매제이자 기병대 원수인 주아생 뮈라가 '주아생 나폴레옹 1세'라는 이름으로 즉위하였다. 뮈라는 나폴리의 독립성을 강화하려 노력하며 행정, 군사, 교육 개혁을 지속했으나,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1812년) 이후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모색하다 나폴레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멸망과 복고 1814년 나폴레옹이 퇴위하자 뮈라는 오스트리아와의 별도 강화를 통해 왕위를 유지하려 했으나, 1815년 나폴레옹이 백일천하로 복귀하자 다시 나폴레옹 편에 서서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했다. 톨렌티노 전투(1815년 5월)에서 오스트리아군에게 결정적으로 패한 뮈라는 코르시카로 도주했고, 1815년 5월 페르디난도 4세가 나폴리로 귀환하여 부르봉 왕정이 복고되었다. 이후 1816년 페르디난도 4세는 나폴리 왕국과 시칠리아 왕국의 통합을 선언하며 '양시칠리아 왕국'을 선포하였다.
주요 특징
- 정치 체제: 나폴레옹의 위성국으로서 프랑스의 정치적, 군사적 통제를 받았으나, 뮈라 시기에는 독자적인 왕조 수립을 시도하였다.
- 사회 개혁: 봉건적 특권 폐지, 토지 재분배, 나폴레옹 법전(민법전) 도입 등 근대적 법제와 행정 체계가 이식되었다.
- 군사: 뮈라 치하에서 나폴리 군대는 프랑스 대육군의 일원으로 러시아 원정, 독일 전역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였다.
참고 사항 본 항목은 1806년부터 1815년까지 존속한 '보나파르트-뮈라 왕조의 나폴리 왕국'을 다루며, 그 이전의 스페인계 부르봉 왕조(1735~1806)나 이후의 양시칠리아 왕국(1816~1861)과는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