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3세(프랑스어: Napoléon III, 본명: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Charles Louis Napoléon Bonaparte, 1808년 4월 20일~1873년 1월 9일)는 프랑스 제2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프랑스 제2제국의 유일한 황제였으며, 프랑스 역사상 마지막 세습 군주이다.
나폴레옹 1세의 동생인 루이 보나파르트와 나폴레옹 1세의 의붓딸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815년 나폴레옹 1세가 몰락한 후 보나파르트 가문이 프랑스에서 추방되면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주로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의 망명지에서 보냈다. 어머니로부터 나폴레옹 1세의 천재성과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열망을 주입받으며 성장했다.
1832년 나폴레옹 1세의 외아들인 라이히슈타트 공작이 사망하자, 보나파르트 가문에서 프랑스의 왕위를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판단하고 정치 활동에 나섰다. 1836년과 1840년 두 차례에 걸쳐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여 체포되었고, 1846년 감옥에서 탈출하여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1848년 2월 혁명 이후 수립된 제2공화국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74.3%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1851년 12월 2일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강제 해산하고 독재적 권력을 장악하였으며, 1852년 12월 2일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 제2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재위 전반기(1852~1860년)는 경제 호황과 함께 국내외 정책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파리 도심을 근대적으로 재건하여 위생적이고 쾌적한 도시로 탈바꿈시켰으며, 은행 제도 현대화, 철도 체계 개선, 해운업 육성 등을 추진하였다. 1869년에는 수에즈 운하 개통을 성사시켰다. 농업 근대화 정책을 통해 프랑스를 주요 농산품 수출국으로 성장시켰고, 1860년 영국과 자유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등 자유무역 정책을 펼쳤다. 노동자에게 협동조합 개설 권리와 파업권을 부여하고, 여성 교육권을 보장하는 등 사회 개혁도 추진하였다.
대외 정책에서는 영국과 연합하여 크림 전쟁(1853~1856)에서 러시아 제국을 패배시켰고,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지원하여 그 대가로 사부아와 니스를 획득하였다. 아시아에서는 베트남에 대한 식민 침략을 개시하였고, 영국과 함께 제2차 아편 전쟁(1858~1860)에 참전하였다. 1866년에는 조선의 병인박해를 구실로 강화도를 공격하는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멕시코에는 프랑스의 보호 아래 제2차 멕시코 제국을 수립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재위 후반기(1860~1870년)는 경제 불황과 외교 정책 실패로 어려움을 겪었다. 1870년 7월 프로이센과의 보불 전쟁이 발발하였고, 같은 해 9월 스당 전투에서 대패하여 포로로 잡혔다. 패전 소식이 파리에 전해지자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1870년 9월 4일 폐위당하였다. 이후 영국으로 망명하여 지내다가 방광결석 수술 후유증으로 1873년 1월 9일 사망하였다.
나폴레옹 3세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어에 능통하였으나 당대 영국 사교계에서는 학식이 얕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보였으나 전제 군주로서의 통치 방식으로 인해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키는 약 160cm로 프랑스 대통령 중 가장 작았으며, 이로 인해 그의 숙부인 나폴레옹 1세의 키가 작았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