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짐 히크메트 란(Nâzım Hikmet Ran, 1902년 1월 15일 ~ 1963년 6월 3일)은 튀르키예(터키)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 영화 감독이다. 본명은 메흐메트 나짐(Mehmed Nâzım)이며, 란(Ran)은 1934년 이후 사용한 성씨이다. 튀르키예 현대 문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되며, 자유시(serbest nazım)를 튀르키예 시에 도입한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는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생애
1902년 오스만 제국 치하의 셀라니크(현재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히크메트 베이는 오스만 정부 관료였고, 어머니 셀릴레 하님은 화가였다. 외가 쪽으로는 폴란드 귀족 혈통이 섞여 있었다. 1918년 헤이벨리아다 소재 오스만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해군 장교로 복무했으나 건강 문제로 1920년 제대하였다.
1921년 아나톨리아로 건너가 튀르키예 독립전쟁에 참여하려 했고, 이후 모스크바로 가서 동양노동자공산대학(KUTV)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수학하였다. 이 시기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등 러시아 아방가르드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 자유시를 쓰기 시작했다.
1924년 튀르키예로 돌아와 좌익 잡지 《아이든르크(Aydınlık)》에서 활동하였으나, 정치적 이유로 여러 차례 체포와 투옥을 반복했다. 1938년에는 "군대를 반란 선동했다"는 혐의로 28년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12년 7개월간 복역하였다. 1950년 일반 사면으로 석방되었으나, 같은 해 국제평화상을 수상했다. 1951년 소련으로 망명하였고, 같은 해 튀르키예 정부에 의해 시민권이 박탈되었다(2009년 사후 회복).
1963년 6월 3일 모스크바 인근 페레델키노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으며,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되었다.
문학적 특징과 주요 작품
히크메트는 초기에는 전통적인 음절격(hece ölçüsü)으로 시를 썼으나, 1922년 모스크바에서 자유시로 전환하였다. 그의 시는 서정성과 이데올로기, 전통적 요소와 혁신적 형식의 독특한 결합으로 특징지어진다. 주요 시집으로 《835 Satır》(1929), 《Sesini Kaybeden Şehir》(1931), 《Benerci Kendini Niçin Öldürdü》(1932), 《Simavna Kadısıoğlu Şeyh Bedreddin Destanı》(1936) 등이 있다. 대표적 장편 서사시로는 《Memleketimden İnsan Manzaraları》(인간의 풍경, 1966~67)가 있으며, 이 작품은 2만 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20세기 전반 튀르키예의 사회사를 다루고 있다.
히로시마 원폭 희생 소녀를 소재로 한 시 《Kız Çocuğu》(소녀)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조안 바에즈, 번즈 등 여러 뮤지션에 의해 노래로 불렸다.
극작가로서 《Kafatası》(1932), 《Unutulan Adam》(1935), 《Ferhad ile Şirin》(1965) 등 다수의 희곡을 남겼다. 소설로는 《Yaşamak Güzel Şey Be Kardeşim》(1967) 등이 있다.
영향과 평가
히크메트는 생전에 정치적 이유로 튀르키예 내에서 작품 발행이 금지되었으나, 국제적으로는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네루다, 장폴 사르트르 등 당대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낭만적 공산주의자", "낭만적 혁명가"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의 시는 튀르키예 사회주의 리얼리즘 시의 기초를 마련했으며, 이후 튀르키예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튀르키예 작곡가 줄퓌 리바넬리, 젬 카라자 등이 그의 시에 곡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