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경렬사(羅州 景烈祠)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죽석리에 위치한 사우(祠宇)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맞서 큰 공을 세운 의병장 및 문신들을 제향(祭享)하는 곳으로, 특히 호남 의병 활동의 중심지 중 한 곳이었던 나주의 역사적 중요성을 보여준다.
개요 경렬사는 17세기 초 지역 유림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임진왜란에서 활약한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정충신(鄭忠信) 등 7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사우는 임진왜란 이후 망가진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역사 경렬사는 1609년(광해군 1년)에 지역 유림들이 나주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절한 창의사 김천일과 의병장 임서(林㥠) 등을 모시기 위해 창건되었다. 이후 1689년(숙종 15년)에는 사액(賜額) 사당으로 승격하여 '경렬사'라는 현판을 받았다. 이는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지원을 받는 사당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당시 다른 많은 사우와 마찬가지로 훼철(毁撤)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1904년 이후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을 봉행하며 선열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배향 인물 경렬사에는 총 7분의 인물이 배향되어 있다.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 김천일(金千鎰, 1537~1593): 임진왜란 당시 창의사(倡義使)로서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순절하였다.
- 정충신(鄭忠信, 1576~1636):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운 무신으로, 호남의병의 정신적 지주 중 한 명이었다.
- 임서(林㥠, 1555~1593): 김천일과 함께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의병장.
- 강항(姜沆, 1567~1618): 임진왜란 중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으나, 일본의 정세와 지리 정보를 탐지하여 조선에 보고하는 등 국가에 큰 공을 세웠다.
- 양응정(梁應鼎, 1519~1581): 학자이자 문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집하는 등 활동하였다.
- 정윤(鄭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건축 및 구성 경내에는 배향 인물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경렬사를 중심으로, 제향 준비 및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던 강당인 명경당(明敬堂)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사우의 전형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주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화유산 지정 나주 경렬사는 그 역사적 가치와 문화재로서의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1974년 12월 26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