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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프 전투

나자프 전투(Battle of Najaf)는 2004년 이라크 전쟁 기간 중 이라크 중부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Najaf)에서 발생한 주요 시가전이다. 미군 및 이라크 정부군과 시아파 반군인 마흐디 군(Mahdi Army) 사이에서 2004년 4월과 8월에 걸쳐 두 차례에 나누어 교전이 벌어졌으며, 특히 8월 5일부터 8월 27일까지의 전투가 가장 격렬했다.

배경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Muqtada al-Sadr)는 2003년 6월 시아파 민병대인 마흐디 군을 창설하였다. 마흐디 군은 미군 점령에 저항하고 시아파 지역과 성지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2004년 3월, 미군이 알사드르 계열의 신문 《알하우자》를 폐쇄하고 그의 측근을 체포하자, 마흐디 군은 4월 4일 바그다드, 카르발라, 나자프, 쿠파 등지에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이는 시아파가 미군을 상대로 벌인 최초의 대규모 무력 대결이었다.

전투 경과

2004년 4월, 나자프에 주둔한 소규모 연합군이 마흐디 군의 공격을 방어하는 교전이 발생했다. 이후 6월 일시적 휴전이 이루어졌으나, 7월 31일 미 해병대 11원정대(11th MEU)가 나자프 지역의 작전 통제권을 인계받았다.

8월 5일, 마흐디 군이 나자프의 이라크 경찰서를 공격하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재개되었다. 미 해병대는 긴급 출동하여 와디우스살람(Wadi-us-Salaam) 묘지 일대에서 마흐디 군과 격전을 벌였다. 이 묘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묘지로, 면적이 약 7제곱마일에 달하며 지하 터널과 지하묘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시가전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미군은 이 묘지 지상과 지하 터널에서 전투를 수행했으며, 이는 베트남 전쟁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본격적인 터널 전투로 기록되었다.

전투는 시내 중심부에서 시작되어 묘지, 구시가를 거쳐 이맘 알리 사원(Imam Ali Mosque) 주변으로 확대되었다. 마흐디 군은 이맘 알리 사원으로 후퇴하여 진지를 구축했고, 미 해병대는 사원 주변을 포위하고 포위전을 전개했다. 8월 26일, 미군 F-16 전투기가 사원 인근의 호텔 두 채에 2,000파운드 JDAM 폭탄 4발을 투하하여 마흐디 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결과

8월 27일, 대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Grand Ayatollah Ali al-Sistani)의 중재로 협상이 타결되어 정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마흐디 군 전투원들은 이맘 알리 사원에서 철수하였고,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다. 이라크 경찰이 나자프 시의 치안을 인계받았다. 이후 마흐디 군은 무장 해제되고 해산되었으나, 산발적인 교전은 수개월간 지속되었다.

사상자

연합군 측 사상자는 미군 전사 9명, 부상 100명 이상, 이라크군 전사 40명, 폴란드군 전사 5명 등으로 보고되었다. 마흐디 군의 사상자는 마흐디 군 측 주장으로 32명 전사, 70명 부상이었으며, 연합군 측 추정으로는 360명 이상 전사, 261명 포로로 기록이 상이하다. 민간인 사상자에 대해서는 정확한 집계가 부족하다.

의의

나자프 전투는 이라크 전쟁 기간 중 미군이 시아파 반군과 벌인 가장 치열한 시가전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전투는 시아파 성지인 이맘 알리 사원이 전장이 되면서 이라크 내 시아파 여론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이라크 정국과 미군 점령 정책에 중요한 변곡점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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