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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토 마사키

나이토 마사키(일본어: 内藤政樹, ないとう まさき)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大名)로, 이와키 다이라 번(磐城平藩)의 6대 번주이자 노베오카 번(延岡藩)의 초대 번주이다. 관위는 종오위하(従五位下), 빈고노카미(備後守)이다.

생애

나이토 마사키는 이와키 다이라 번의 선대 번주인 나이토 요시히데(内藤義英)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다만 생년에 대해서는 한국어 위키백과가 1706년 12월 3일로, 일본어 위키백과가 1703년 12월 7일(원록 16년 10월 29일)로 기록하여 출처 간 차이가 있다. 사망 연월일은 1766년 10월 27일(메이와 3년 9월 24일)로 기록되어 있으며, 향년 약 61세였다.

교호 3년(1718년), 후사 없이 사망한 선대 번주 나이토 요시시게(内藤義稠)의 뒤를 이어 이와키 다이라 번의 번주가 되었다. 당시 나이가 어려 아버지 요시히데가 후견인으로서 번 통치에 관여하였다.

고쇼 소동(御生騒動)

번주 취임 이듬해 정월, 마쓰가 야카라노스케(松賀族之助)와 마쓰가 다카오키(松賀孝興) 부자가 축하차 독이 든 만주(饅頭)를 헌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요시히데가 만주를 개에게 먹였더니 개가 곧바로 죽어버렸다. 마쓰가 부자는 번정을 장악하고 나아가 번주 자리까지 노리고 있었으며, 후견인인 요시히데가 있는 이상 자신들의 계획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마사키를 독살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시히데는 마쓰가 일당을 체포·조사하여 범인을 밝혀냈고, 마쓰가 다카오키는 감옥에서 옥사했으며, 관련자들은 영구 칩거 명령이나 처형 등의 처벌을 받았다. 마쓰가 가문은 단절되었다. 이로써 엔포 8년(1680년)부터 이어져 온 고쇼 소동이 종결되었다.

겐분 백성 일으킴(元文百姓一揆)

이후 마사키가 번주로서 친정을 하게 되었으나, 고쇼 소동으로 인한 혼란과 마쓰가의 악정으로 인한 세금 부담에 시달리던 번의 백성들은 점차 불만을 키웠다. 홍수와 흉작으로 번의 재정 상황도 악화되었다. 겐분 3년(1738년) 9월에는 약 2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성 아래로 몰려와 관리들의 저택과 관청을 파괴하는 대규모 잇키(一揆)가 발생했다. 마사키는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고 지도자 26명을 체포했으며, 그중 7명을 처형하였다.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마사키는 엔쿄 4년(1747년) 징벌 차원에서 휴가(日向) 노베오카 번으로 전봉되었다. 이 전봉은 에도 시대 다이묘 전봉 가운데 최장거리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은거와 사망

호레키 4년(1754년) 적자인 마사타카(政尭)가 사망하자, 호레키 6년(1756년) 양자인 나이토 마사아키(内藤政陽)에게 번주직을 물려주고 은거하였다. 이후 메이와 3년(1766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관련 작품

201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초고속! 산킨코타이(超高速!参勤交代)》에서 등장인물로 묘사되기도 하였다.

※ 생년과 관련하여 한국어 위키백과와 일본어 위키백과의 기록에 차이가 있어 정확한 출생 연도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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