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에 카네츠구(直江兼続, 1560년~1619년 1월 23일)는 일본 센고쿠 시대(전국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활동한 무장으로, 우에스기 가문의 가로(家老)이자 집정(執政)이다. 주군인 우에스기 가게카쓰를 보좌하며 내정과 외교, 군사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애(愛)' 자를 새긴 투구와 '나오에장(直江状)'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출생과 초기 생애
1560년(또는 1559년) 에치고국(현 니가타현) 사카도 성에서 히구치 가네토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우에스기 가문의 중신 나오에 가게쓰나의 여동생이다. 아명은 요로쿠(与六)였다. 어린 시절부터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가 된 나가오 아키카게(후의 우에스기 가게카쓰)를 따라 가스가야마 성으로 들어가 가게카쓰를 섬기기 시작했다.
나오에 가문 상속과 집권
1578년 우에스기 겐신 사후 발생한 오다테의 난(御館の乱)에서 아버지와 함께 가게카쓰 측에 가담하여 승리에 기여했다. 1581년, 가게카쓰의 측근이었던 나오에 노부쓰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가게카쓰의 명으로 노부쓰나의 미망인 오센과 혼인하여 나오에 가문을 계승하였고, 에치고 요이타 성주가 되었다. 이후 가리노 히데하루와 함께 우에스기 가문의 이인 집정 체제를 이루었으며, 히데하루 사후에는 단독 집정 체제를 구축하여 가네쓰구가 사망할 때까지 유지했다.
도요토미 정권 시기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도요토미 성씨를 하사받고 종오위하 야마시로노카미(山城守)에 서임되었다. 1590년 오다와라 정벌에 참전하였고, 임진왜란(문록·경장의 역)에도 주군을 따라 조선에 파견되어 웅천(熊川)에 왜성 축성에 관여했다. 1598년 히데요시의 명으로 우에스기 가문이 에치고에서 아이즈 120만석으로 전봉될 때, 가네쓰구는 데와국 요네자와에 6만석의 영지를 받았다.
세키가하라 전투와 나오에장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해 가던 중, 우에스기 가문이 모반을 꾀한다는 참언이 이에야스에게 전해졌다. 이에야스가 가게카쓰에게 상경을 요구하자, 가네쓰구는 대리로 이에야스를 강하게 비난하는 서한을 보냈는데, 이것이 유명한 '나오에장(直江状)'이다. 다만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이 문서의 문면이 후세에 위작 또는 개찬되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이 서한은 이에야스의 아이즈 정벌(회진 원정)을 촉발시켰고, 이것이 세키가하라 전투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가네쓰구는 3만 병력을 이끌고 모가미 요시미쓰의 영지를 침공하여 하세도 성 전투 등을 벌였으나, 서군의 패전 소식을 접하고 철수했다.
감봉과 영지 경영
세키가하라 전투 패전 후 우에스기 가문은 아이즈 120만석에서 요네자와 30만석으로 대폭 감봉되었다. 가네쓰구는 가신을 한 명도 해고하지 않고 모두 요네자와로 이주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치수 사업, 신전 개발, 특산품(잇꽃, 밀랍 등) 생산 장려, 광산 개발 등 내정에 주력하여 표고 30만석에 비해 실질 생산량(내고)을 51만석까지 끌어올렸다. 또한 도쿠가와 측근인 혼다 마사노부와 혼인 동맹을 맺는 등 외교적 노력을 통해 막부의 신뢰를 얻고 군역 면제를 받아내기도 했다.
사망과 평가
1619년(또는 1620년) 1월 23일 사망하였다. 사후 그의 아내 오센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후계자인 우에스기 사다카쓰의 양육을 도왔다.
가네쓰구는 무장으로서의 능력뿐 아니라 뛰어난 내정가이자 외교가로서 평가받는다. '애' 자 투구는 불교의 애염명왕(愛染明王)에서 유래한 것으로, 단순한 '사랑'의 의미보다는 불교적 수호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 2009년 NHK 대하드라마 《천지인(天地人)》에서 그의 생애가 다루어졌으며, 《전국무쌍》 시리즈 등 다양한 대중문화 매체에서도 등장하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