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 스케미쓰(那須資弥, 1628년 ~ 1687년 8월 2일)는 에도 시대 전기의 하타모토이자 다이묘이다. 시모쓰케노쿠니(下野国) 나스번(那須藩) 번주를 거쳐 동국(東国) 가라스야마번(烏山藩) 초대 번주를 지냈다. 나스씨(那須氏) 제24대 당주로 기록되어 있다.
생애
나스 스케미쓰는 아오키 토시나가(青木利長)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하타모토였던 나스 스케카게(那須資景)의 양자가 되어 나스 가문을 이었다. 초명은 마시야마 다카하루(増山高春)였으며, 이후 스케마사(資政), 스케미쓰(資弥) 등으로 개명했다. 관위는 종5위하로, 거성(居城) 차원에서 우에몬노스케(右衛門尉)·우에몬노스케(右衛門佐) 등을 역임했고, 마지막 관직명은 도토미노카미(遠江守)였다.
그는 에도 막부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 도쿠가와 이에쓰나(徳川家綱), 도쿠가와 쓰나요시(徳川綱吉) 3대를 섬겼다. 1652년(조오 원년) 나스 스케카게의 양자가 된 이후 막부의 신하로서 여러 직책을 수행했다.
가라스야마 번주와 우쓰노야마 소동
1681년(덴나 원년) 가라스야마 번의 번주가 되어 성주가 되었다. 1683년(덴나 3년) 무쓰노쿠니 히로사키번(弘前藩) 10만 석의 번주 쓰가루 노부마사(津軽信政)의 셋째 아들인 노부노리(資徳)를 양자로 들여 가문을 잇게 하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스케미쓰가 실제로는 차남 스케히로(資寛)를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막부에 숨긴 것이 발각되어 문제가 되었다. 스케미쓰가 1687년(조쿄 4년) 사망한 직후, 양자 스케노리가 가독을 상속했으나, 실차남 스케히로와 그 생모가 스케노리의 가독 상속이 부당하다고 막부에 호소하게 되면서, 양자 입적 당시 막부에 허위 신고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이른바 '가라스야마 소동'으로 불리며, 결국 나스 가문의 개역(改易)과 함몰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가문 재건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으나, 양자인 스케노리 계통을 통해 나스 가문은 어느 정도 복구되었다. 장남 마시야마 마사미쓰(増山正弥)는 백부 마시야마 마사토시(増山正利)의 양자가 되어 별도의 가문을 이었다.
가족 관계
- 부친: 아오키 토시나가(青木利長)
- 양부: 나스 스케카게(那須資景)
- 정실: 도이 도시카쓰(土井利勝)의 딸
- 아들: 마시야마 마사미쓰(長男, 増山正弥), 후쿠하라 스케히로(次男, 福原資寛)
- 양자: 나스 스케노리(資徳, 쓰가루 노부마사의 셋째 아들)
참고 자료
- 『간세이 중수 제가보(寛政重修諸家譜)』 제735권
- 『나스 가보(那須家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