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파(Nazoreans; 그리스어: Ναζωραῖοι, Nazōraioi)는 1세기 유대교의 초기 유대 기독교 종파이다. 이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으면서도 토라(모세 율법)를 계속 준수한 유대인 기독교인 집단으로, 초기 기독교의 유대적 뿌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종파이다.
어원
'나사렛파'라는 명칭은 갈릴리의 작은 마을인 나사렛(Nazareth)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예수는 나사렛 출신이었기에 '나사렛 예수'로 불렸고, 그의 추종자들은 자연스럽게 '나사렛 사람들' 또는 '나사렛파'로 지칭되었다. 히브리어 נוֹצְרִי(nôṣrî)와 아랍어 نَصْرَانِي(naṣrānī)는 오늘날까지도 '기독교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역사적 배경
이 용어가 처음 등장하는 사례는 신약성경의 사도행전 24장 5절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 고발자들에 의해 "나사렛 분파의 주모자"(πρωτοστάτην τε τῆς τῶν Ναζωραίων αἱρέσεως)로 고발된다. 당시 이 용어는 단순히 나사렛 예수의 추종자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용어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4세기경까지 시리아 지방에 존속했던 나사렛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졌다:
- 토라 준수: 할례, 안식일 준수, 정결법 등 유대교적 관습을 계속 지켰다.
- 예수의 신성 인정: 예수를 메시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
- 이방인 기독교와의 차별성: 사도 바울이 주도한 이방인 기독교(토라 불필요를 주장)와 달리,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교부들의 기록
4세기 교부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Epiphanius of Salamis)는 그의 저서 《파나리온》(Panarion)에서 나사렛파를 상세히 기술하였다. 이후 히포의 제롬(Jerome)과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도 이들을 언급하였다. 이들 교부들은 사도행전에 언급된 '나사렛 사람들'과 당시(4세기)의 나사렛파를 구별하여 서술하였다.
에비온파와의 관계
나사렛파는 종종 에비온파(Ebionites)와 비교된다. 두 집단 모두 유대 기독교 계통이었으나, 에비온파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그를 단순한 인간 예언자로 보았던 반면, 나사렛파는 예수의 신성과 메시아 직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예술사에서의 '나자렛파'
한편, 19세기 초 독일에서는 나자렛파(Nazarener)라는 미술 운동이 형성되었다. 이는 빈 아카데미 학생들이었던 요한 프리드리히 오버베크(Johan Friedrich Overbeck)와 프란츠 프포르(Franz Pforr)를 중심으로 결성된 화가 집단으로, 고전주의에 반대하고 중세 및 르네상스 초기의 종교화 정신을 부활시키고자 하였다. 이들은 1809년 '성 루카 조합(Lukasbund)'을 창설하고 로마로 활동 무대를 옮겨 종교화 제작에 전념하였다. 이 명칭은 예술사적 용어로서 위의 역사적 종파와 직접적인 연속성은 없으나, 종교적 이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명칭이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