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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

정의

나루는 강가나 냇가, 또는 좁은 바닷목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일정한 장소를 가리키는 교통용어이다. 즉, 사람이나 물자를 배에 싣고 물을 건너기 위해 이용하던 지점을 뜻하며, 순우리말에 해당한다.

어원

나루의 정확한 어원은 학계에서 단정적으로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다음과 같은 추정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나루'는 '나라'와 어원이 비슷하여, 고대의 원시적 형태의 국가가 강가에 위치하여 인근 부족의 교역을 중개하던 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추측된다. 둘째, 배로써 사람이나 짐을 실어나르기 때문에 '나르는 곳'에서 '나루'라는 말이 나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언어학적으로는 1459년 간행된 《월인석보》(月印釋譜)에 중세 한국어 'ᄂᆞᄅᆞ'(Yale 표기: nòlò) 형태로 처음 확인되며, '나르다'(nareuda, "나르다")와의 관련성이 지적되나 이 역시 추정에 해당한다. 위키낱말사전에는 한자 '覶縷'에서 왔다는 표기도 있으나, 이것은 '나루하다'의 어근으로 쓰인 별개 용례로서 동음이의어적 성격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나루'와 '나루터'의 구분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나루'는 긴 강이나 내에서 배가 건너다니는 부분 그 자체를 이르는 말로 '강구'(江口)와 동의어적 성격을 지닌다. 반면 '나루터'는 나루에서 배가 실제로 닿고 떠나는 구체적인 자리를 뜻하며 '도선장'(渡船場)과 동의어적 관계에 있다. 즉 '나루'는 물을 건너는 구간·지점 전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나루터'는 배가 정박하고 승하차가 이루어지는 물리적 장소를 가리킨다.

한자 표현과 지명

나루는 한자로 도(渡)·진(津)이라고 하며, 그보다 큰 것을 포(浦), 대규모의 바다 나루를 항(港)이라고 표현하였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강이나 바닷목에 군대를 주둔시킨 곳은 진(鎭)이라 하였다. 이 때문에 현재의 한국 지명 중 '포'(浦)나 '진'(津)으로 끝나는 곳은 과거에 나루였던 경우가 많으며, 대표적으로 서울의 마포·영등포·광진·양화진·노량진, 경상북도의 포항, 울산의 방어진 등을 들 수 있다. 한문을 쓰지 않고 '나루'라는 순우리말을 그대로 지명에 붙인 예로는 서울 한강변의 광나루·동작나루·송파나루·양화나루·노량나루 등이 있었다.

역사적 기능과 역할

나루는 전근대 사회에서 교량 건설이 어려웠던 시절, 하천과 해협으로 차단된 육로를 연결하는 결절점 역할을 하였다. 나루에는 나룻배(도하선)와 사공이 있었고, 뱃사공은 고려 시대에 진척(津尺), 조선 시대에 진부(津夫)라고 불렸다. 나루는 여객과 물자의 이동이 집중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진취락(渡津聚落)이 형성되었고, 여관 겸 주점인 주막이 발달하기도 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국대전》에 나루의 관리 규정이 상세히 성문화되었고, 각 나루는 국가의 명령 전달과 조세곡의 중앙 집결을 담당하는 교통로의 일부로 기능하였다.

현대적 변화

철도·자동차 도로·교량 등 근대적 교통수단의 발달로 나루의 기능은 점차 소멸하였다. 현재는 많은 나루가 사라졌으나, 그 흔적이 지명이나 다리 이름(광진교, 마포대교, 양화대교 등)으로 남아 있다. 다만 일부 지역에서는 관광 유람선이나 도선장의 형태로 그 전통이 현대적으로 재조명되고 있기도 하다.

문학에서의 나루

나루는 한국 문학에서 이별·만남·출발·도착·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상징하는 중요한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고대 가요 《공무도하가》, 고려 속요 《서경별곡》, 정지상의 시 《대동강》,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 박목월의 시 《나그네》(“강나루 건너서 / 밀밭길을…”) 등에서 나루가 활용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문화사적으로 나루는 뭍과 물, 내·외래 문화가 교류하고 충돌하는 경계의 장소로 이해된다.

참고 자료

본 항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국어원, 위키낱말사전 등의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다만 어원 부분은 학계에서 확정된 결론이 아니므로 추정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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