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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태

김환태(金煥泰, 1909~1944)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의 문학 비평가이자 교육자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눌인(訥人)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서 출생하였다.

생애

김환태는 1909년 11월 29일 아버지 김종원과 어머니 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주에서 보통학교 4년을 마친 후 1922년 전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일본인 교사 추방을 위한 동맹휴학에 참여하여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이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27년 졸업하였다. 1928년 일본 교토의 도시샤 대학(同志社大學) 예과에 입학하여 1931년 수료하였고, 1934년 규슈 대학(九州大學)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도시샤 대학 재학 시절 시인 정지용(鄭芝溶)과 교류하였다. 귀국 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고, 1940년부터 2년간 서울 무학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3년 폐결핵이 악화되어 고향 무주로 돌아갔으며, 1944년 5월 26일 3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비평 활동

김환태는 1934년 3월 『조선일보』에 프란시스 그리슨의 「예술과 과학과 미와」를 번역하여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4월 같은 신문에 평론 「문예 비평가의 태도에 대하여」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비평 활동에 나섰다. 1936년 구인회(九人會) 후기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시문학』, 『시원』의 동인으로도 활동하였다.

그는 비평의 목적을 '재구성적 체험'에 두고 인상주의 비평을 주창하여 1930년대 한국 평단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였다. 공리주의적 문학관을 반대하고 문학과 비평의 독립성 및 순수성을 주장하였으며, 이로 인해 카프(KAPF) 계열의 임화, 김두용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 월터 페이터(Walter Pater), 콜리지, 생트뵈브, 프랑스, 지드 등 서구 비평 이론을 도입하여 한국 현대 비평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주요 평론으로는 「문예 시평: 나의 비평 태도」(1934), 「예술의 순수성」(1934), 「비평 태도에 대한 변석」(1936), 「정지용론」(1938), 「순수 시비」(1939), 「문학의 성격과 시대」(1940) 등이 있다.

추모와 기념

1972년 부인이 유고집 『김환태 전집』을 간행하였다. 1986년 무주 나제통문 앞에 눌인 김환태 문학 기념비가 세워졌다. 1988년 문학사상사에서 '김환태 평론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2009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권영민 편집으로 『김환태 전집』(문학사상·무주문화원)이 재간행되었고, 같은 해부터 '눌인 김환태 문학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12년 전라북도 무주군에 김환태 문학관이 건립되어 운영 중이다. 묘소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공동묘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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