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군(金化郡)은 조선시대 강원도에 속했던 행정구역으로, 오늘날의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김화읍·근남면·서면 일대와 북한 지역 일부에 해당한다. 다만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이 지역은 '군(郡)'이 아닌 '현(縣)' 단위로 운영되었으며, '김화군'이라는 명칭이 공식 행정구역으로 사용된 것은 조선 말기인 1895년 이후이다.
연혁
고구려 시대에는 부여군(夫如郡)이라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 때 부평군(富平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현종 9년(1018)에 김화현(金化縣)으로 고쳐 동주(東州, 지금의 철원)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 인종 21년(1143)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 8도제가 정비되면서 김화현(金化縣)이 되었고, 현감(縣監)이 파견되어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었다. 별호(別號)는 화산(花山)이었다. 세조 1년(1455)에는 군익도(軍翼道) 체제에 따라 회양도(淮陽道)의 좌익(左翼)으로 편제되었고, 세조 3년(1457) 진관(鎭管) 체제에서 회양진(淮陽鎭)에 귀속되었다. 숙종 18년(1692)에는 회양진 소속에서 철원영장(鐵原營將)으로 이속되었다. 인조 22년(1644)에는 낭천현(狼川縣)을 폐지하여 김화현에 합병하였다가 효종 4년(1653)에 다시 분리하였다.
조선 말기인 1895년(고종 32) 23부제 시행으로 김화군(金化郡)이 되어 춘천부(春川府)에 속하였고, 이듬해 13도제로 환원되면서 강원도에 소속되었다. 1908년에는 김화군이 금성군(金城郡)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화군이 신설됨과 동시에 금성군이 폐지되어 김화군에 합쳐졌다.
자연환경과 경제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조선 초기 김화현의 호수는 181호, 인구는 517명이었으며, 토지가 많이 메마르고 기후가 매우 차다고 기록되어 있다. 간전(墾田)은 3,288결이었으나 이 중 논은 겨우 143결에 불과하여 밭농사 위주의 지역이었다. 토공(土貢)으로는 꿀, 밀, 시우쇠, 잣, 석이, 오배자, 각종 가죽 등이 납부되었고, 약재로는 오미자, 복령, 인삼 등이 생산되었다. 토산물로는 석철(石鐵)이 현 동쪽 20리 방동천에서 났다.
교통과 시설
김화현에는 신화역(新化驛)과 생창역(生昌驛) 두 개의 역이 있었으며, 봉수(烽火)는 소이산(所伊山) 한 곳이 있었다. 소이산 봉수는 동쪽으로 금성 아현, 서쪽으로 평강 진촌과 연결되었다.
군사
조선 초기 군정(軍丁)으로 시위군(侍衛軍) 67명, 강군(舡軍) 10명이 편제되어 있었다.
1895년 이후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김화현이 김화군으로 승격되었으나, 이는 조선 왕조 말기에 해당한다. 이후 1914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을 거쳐 1963년 남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화군의 수복 지역 대부분이 철원군에 편입되면서 오늘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