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미(金弘微, 1557 ~ 1605)는 조선 중기의 문신·관료이자 성리학자이다. 자는 창원(昌遠), 호는 성극당(省克堂)·성극(省克)이며, 본관은 상주(尙州)이다.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향시에서 장원으로 급제했지만 곧바로 대과에 응시하지 않고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다. 이후 1585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관료 경력은 홍문관·예문관을 비롯해 이조 좌랑·이조 정랑·승정원 동부승지 등 다양한 부서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1589년 이조 좌랑에 임명된 뒤 정여립의 난 사건에 연루되어 기축옥사(己丑獄事) 시기에 파면·불이익을 받았으나, 이후 복권되어 남인 진영에 편입하였다.
학문적으로는 조식·류성룡 등 남명 유학자들의 제자를 받으며 유학 경전을 정통하게 익혔고, 왕실에 주역·경연 강론을 맡아 왕의 찬탄을 받는 등 학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선조 대왕이 판옥선·거북선 설계·제조를 맡기기도 할 정도로 선박 제조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문은 김상직(金尙直)의 6대손으로, 증조부는 김예강(金禮康), 할아버지는 김윤검(金允儉), 아버지는 옥과현감 김범(金範)이며, 어머니는 창녕 조씨(昌寧曺氏)이다. 결혼을 통해 류성룡의 조카 사위가 되었으며, 류운룡의 사위이기도 하다.
임진왜란(1592 ~ 1598) 발발 후 경상좌도 도사로 임명돼 전쟁 초기의 군사 행정에 참여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홍문관 교리·이조 정랑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다. 말년에는 사간원·성균관 등에서 교육·감시 업무를 수행하였다.
전반적으로 김홍미는 조선 중기의 사림·남인 진영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관료로, 문과 급제 후 다수의 관직을 맡아 국가 행정에 기여했으며, 학문과 실용 기술(특히 선박 설계) 양면에서 조선 왕조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