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동 고분군은 경상남도 김해시 칠산동에 위치한 가야 시대의 고분군이다. 금관가야의 지배층 또는 유력 인물들의 묘역으로 추정되며, 가야의 역사와 문화, 특히 금관가야의 정치적 위상과 사회 구조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70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및 위치 김해시 칠산동의 낮은 구릉 지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대성동 고분군 등 금관가야와 관련된 주요 유적들이 분포해 있다. 현재 30여 기의 크고 작은 봉토분(흙무덤)들이 확인되고 있다.
역사적 배경 및 특징 이 고분군은 주로 5세기에서 6세기경, 즉 금관가야의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금관가야는 철 생산과 해상 교역을 통해 발전하였으며, 이 고분군에 묻힌 사람들은 그러한 배경 속에서 지역을 통치했던 지배층으로 여겨진다.
고분의 주요 형식은 목곽묘(木槨墓)와 수혈식 석곽묘(竪穴式 石槨墓)가 혼재되어 나타난다. 특히 비교적 규모가 큰 봉토 아래에 목곽이나 석곽을 만들고 주위에 돌을 쌓거나 흙을 덮어 마무리하는 방식이 많다. 이는 당시 가야 지역의 무덤 축조 기술과 매장 문화를 잘 보여준다.
발굴 및 출토 유물 과거 수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출토 유물로는 토기(土器), 철기(鐵器), 장신구(裝身具) 등이 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토기는 가야 토기의 특징을 보여주며, 철제 갑옷, 무기류 등의 철기류는 금관가야의 우수한 제철 기술과 활발했던 대외 교류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금제 귀걸이, 은제 허리띠 장식 등은 피장자의 높은 신분을 나타낸다. 이러한 유물들은 가야 시대의 생활상, 공예 기술, 대외 관계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가치 및 의의 김해 칠산동 고분군은 금관가야의 중심지에서 확인된 지배층의 무덤 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대성동 고분군과 함께 금관가야의 실체를 규명하고, 삼국시대 가야사의 공백을 메우는 데 필수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가야의 문화와 국제 교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현재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호 및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