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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후김)

김해 김씨(후김)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신라계 김해 김씨로, 경순왕의 후예인 김렴(金濂)을 시조로 삼는다. 수로왕 계열의 김해 김씨(선김, 先金)와 구분하여 '후김(後金)'이라 부른 것이다.

계통과 시조

후김의 시조 김렴은 경순왕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고려조에서 벼슬이 봉어(奉御)에 이르렀고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김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조선 후기 1784년 개성에서 발견된 《김은열 묘지명》에 따르면 경순왕의 4자(四子)가 대안군 김은열(金殷說)이며, 시조 김렴이 그 3자라고 전한다. 다만 《신라김씨분파연원도》에는 김렴이 대안군 김은열의 증손이라 기록되어 있어 세대 관계에 대한 기록상 차이가 있다.

분적(分籍)과 김녕 김씨와의 관계

후손 김시흥(金時興)이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공적을 세워 김녕군(金寧君)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김녕(김해의 옛 지명)으로 하여 분적하여 김녕 김씨(金寧金氏)로 창본하였다. 이때 본관을 김녕으로 바꾸지 않고 김해로 유지한 파가 익화파(益和派)·종남파(從南派)·법흥파(法興派)·종민파(宗敏派) 등이다.

고려 말에 김녕이라는 지명이 김해로 바뀌면서 본관도 김해로 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김수로왕 계열의 김해 김씨와 혼동되어 '후김'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1881년(고종 21)의 왕명에 의해 다시 김녕으로 개칭되었다.

'후김'이라 불린 배경

수로왕 계의 김해 김씨를 '선김(先金)', 김알지 계의 김해 김씨를 '후김(後金)'이라 하여 구분하는 관행이 있었다. 후김은 경순왕 계열의 신라계 김씨 가문이라는 점에서 수로왕 계열과 시조가 다르다.

가문의 역사

조선 시대에 이르러 이 가문은 크게 현달하지 못하였다. 법흥파(法興派)의 파조 김춘(金春)이 김해 군수로 있을 때, 족형이었던 백촌 김문기(金文起)가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순절하면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자, 황해도 풍천으로 피신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분파

후김의 분파로는 익화파, 종남파, 법흥파, 종민파 등이 있으며, 집성촌으로는 황해도 풍천과 평안북도 용천군 법흥면이 알려져 있다. 2000년 기준 인구는 약 199,544명으로 집계되었다.

같이 보기

김해 김씨(선김), 김녕 김씨, 김해 김씨 (김충선) 등이 관련 성씨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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