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공씨(金浦公氏)는 경기도 김포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공(公)씨는 한국에서 희귀한 성씨로, 김포 공씨는 그중에서도 현존하는 대표적인 본관으로 알려져 있다.
기원
《김포공씨세보(金浦公氏世譜)》에 따르면, 공씨의 선계는 중국 노(魯)나라의 왕족이자 공자(孔子)의 제자로 72인의 반열에 들었던 공하수(公夏守)라고 전한다. 다만 이는 족보에 기록된 계보적 주장으로, 역사적 검증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역사
시조로 전하는 인물은 공윤보(公尹輔)이다. 그는 당(唐)나라 18학사의 한 사람으로, 755년(신라 경덕왕 14)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피해 신라에 동래하여 김포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이 역시 족보에 근거한 전승으로, 당시의 구체적인 사료적 검증은 제한적이다.
분파
김포 공씨는 크게 세 파로 나뉜다.
- 문천파(文川派): 27세손 공보언(公普彦)이 조선 세조 때 불복신(不服臣)의 일파로 몰려 함경도 문천(文川)으로 유배되고 아전으로 강등되어 문천에 정착하였다.
- 벽동파(碧潼派): 공명례(公明禮)가 계공랑(啓功郞)으로 1478년(조선 성종 9) 김포에서 능(陵)을 옮길 때 왕에게 직간하다가 화를 입어 평안도 벽동(碧潼)으로 강제 이거당하였다.
- 창원파(昌原派): 정승 공의(公義)의 후손들이 누대로 함안에 살다가 창원으로 이거하면서 일파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김포 공씨는 문천 공씨, 벽동 공씨, 창원 공씨 등의 이칭으로도 불린다.
주요 인물
- 공서현(公珪, 1512년생):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덕장(德璋). 1521년(중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같은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학유(學諭)에 기용된 뒤 홍문관저작·예문관봉교·정언 등을 거쳐 전적에 이르렀으며, 시문에 능하였다.
- 공창준(公昌俊, 1867년~1907년): 독립운동가. 1895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1896년 전덕기와 함께 청년운동에 종사하였다. 1900년 그리스도교 전도사로 계몽운동에 힘썼으며, 1905년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규탄하다가 일제의 반감을 사 1907년 아들과 함께 사형당하였다. 1995년 8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공병우(公丙禹, 1906년~1995년): 안과 의사. 평안북도 벽동 출신. 1949년 세벌식 속도 한글 타자기를 처음으로 발명하였으며, 1980년 최초로 세벌식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하였다. 한글학회 이사, 한글기계화연구소 소장, 한글문화원 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글 전용과 한글 기계화 및 전산화에 공헌하였다.
인구
- 1985년: 김포 공씨 297가구 1,259명 + 문천 공씨 104가구 502명 = 총 1,761명
- 2000년: 김포 공씨 521가구 1,715명 + 문천 공씨 215가구 686명 = 총 2,401명
- 2015년: 김포 공씨 426명 + 벽동 공씨 5명
본관 연혁
김포(金浦)는 경기도 서쪽 한강 하구에 위치한 옛 김포군 지역의 이름이다. 고구려 때는 검포현(黔浦縣)이라 하였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김포로 개칭되어 장제군(長堤郡, 지금의 부평)의 영현이 되었다. 이후 1172년(고려 명종 2)에 분리되어 감무를 두었다.
참고 사항
공(公)씨는 공자 집안의 공(孔)씨와는 한자가 다른 별개의 성씨이다. 《조선씨족통보》에는 공씨의 본관이 김포, 문천, 창원, 개성, 인천, 풍곡, 삼계, 삼가 등 10여 본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존하는 관향은 김포 공씨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