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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진 (극작가)

김태진(金兌鎭, 1905년~1949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한국 연극인·극작가이다. 일본식 이름은 시마 도루(志摩貫)이며, 예명으로 남궁운(南宮雲)을 사용하였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하여 함경남도 단천에서 성장하였다. 단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3년 극단 예림회에 입단하면서 연극계에 입문했다. 이후 1924년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업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25년 영화 《아리랑》(나운규 감독)에 출연하며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1927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주연을 맡은 영화 《뿔빠진 황소》를 발표했다.

1929년 이후 좌파 문화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여 신흥영화예술가동맹 창립에 참가했고, 1931년 극단 청복극장 창립에도 관여하는 등 프로극운동에 참여했다. 1933년 영화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1934년 출옥한 뒤에는 전향하여 '국민연극' 계열의 극작가로 활동했다. 이 시기 그는 친일 희곡을 다수 집필했으며, 1942년 제1회 연극경연대회에 《행복의 계시》, 1943년 제2회 대회에 《아름다운 고향》을 출품했다. 그의 일제 강점기 활동은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광복 직후에는 좌파 진영인 조선연극동맹에서 극작가로 활동했으며, 1946년 역사극 《임진왜란》의 극본을 집필했다. 1947년 월북한 이후 북한에서 역사극 《리순신 장군》을 창작하여 호평을 받았다. 1949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후 정확한 생애 경위는 충분히 밝혀져 있지 않으며 1957년 시나리오 《도화선》을 집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시점까지 생존하여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영화와 연극 분야에서 배우, 연출가, 극작가, 비평가로 활동한 전방위적 예술인이었다. 영화 작업과 배우 활동 시에는 예명 남궁운을, 극작과 연출 등 연극 활동 시에는 본명 김태진을 주로 사용했다. 북한에서는 그를 사회주의 사실주의 연극과 영화에 기여한 예술가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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