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경수(景受), 호는 건재(健齋). 전라도 나주 출신이다.
생애
1573년(선조 6년) 문과에 급제하여 담양부사, 장흥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로 평가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그는 고향인 나주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호남 방어에 나섰다. 이후 북상하여 강화도를 거점으로 의병을 규합하고, 군량을 확보하는 등 의병 활동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전라도 광주 목사(牧使) 권율(權慄)과 함께 호남 지역을 방어하고,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593년(선조 26년) 6월, 왜군이 진주성(晉州城)을 재차 공격한 계사 진주성 전투(癸巳 晉州城戰鬪)에서 그는 병마사(兵馬使) 최경회(崔慶會), 창의사(倡義使) 고종후(高宗厚) 등과 함께 굳게 결사 항전하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성의 함락이 임박하자, 그는 아들 김상건(金象乾), 종사관 이종경(李宗慶) 등과 함께 촉석루(矗石樓)에서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순국하였다.
사후 평가 및 유적
그의 충절을 기려 조정에서는 증(贈) 좌찬성(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추증하고, 충의공(忠毅公)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나주의 충렬사(忠烈祠), 진주의 충렬사 등 전국 각지의 사당에 배향되어 있다.
김천일은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주역 중 한 명으로 평가받으며,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이자 애국적인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