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질은 한국 역사에서 여러 인물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한자 표기에 따라 서로 다른 인물이 존재한다.
1. 김질 (金礩, 1422~1478) — 조선 전기의 문신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정치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가안(可安), 호는 쌍곡(雙谷),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증손이며, 영의정 정창손(鄭昌孫)의 사위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 학사로 활동하였으며, 성삼문·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거사의 실패 가능성을 우려하여 1456년 장인 정창손과 함께 세조에게 고변하였고, 이로 인해 사육신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후 세조의 신임을 받아 좌익공신 3등에 책록되었고, 판군기감사·승정원 승지·병조참판 등을 거쳐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이후 공조판서·병조판서·형조판서·우참찬·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1468년(예종 즉위년) 우의정, 이어 좌의정에 올랐다. 한명회·신숙주 등과 함께 원상(院相) 세력을 형성하여 예종과 성종 초기의 국정을 주관하였으며, 구성군 이준을 제거하는 데 참여하였다. 1471년 좌리공신 2등으로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진봉되었고, 《경국대전》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478년 사망하였다.
2. 김질 (金叱) — 금관가야의 왕
금관가야 제6대 왕인 좌지왕(坐知王, 재위 407~421)의 본명이다. 《삼국유사》 등에 기록된 가야 왕계의 한 인물로, 좌지왕은 금관가야의 제6대 군주로서 재위 기간은 407년부터 421년까지로 전해진다.
3. 김질 (金質, 1496~1561) — 조선 중기의 학자·효자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문소(文素), 호는 영모당(永慕堂).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효행이 지극하여 명종으로부터 정려(旌閭)를 하사받았다. 기대승(奇大升)·양응정(梁應鼎) 등과 교유하였으며, 저서로 《영모록(永慕錄)》·《육사자책설(六事自責說)》이 있다.
이상의 세 인물은 모두 '김질'이라는 동일한 음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한자 표기(金礩·金叱·金質)와 시대·신분이 각각 다르므로 구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