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金振泰)는 대한제국 말기의 친일 단체인 일진회(一進會) 회원이었다. 아호는 운소(雲沼)이다.
1905년 송병준, 이용구 등이 전년도에 결성하여 운영 중이던 친일단체 일진회의 평의원이 되었고, 1908년에는 일진회 평안북도 지부장을 맡아 한일병합조약 체결을 재촉하는 합방청원운동을 벌였다. 1908년에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윤갑병 등과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勳五等瑞寶章)을 서훈받았다.
1910년 한일 병합 이후에는 일진회 해산금으로 150원을 수령하였고, 1934년 흑룡회(黑龍會)가 세운 일한합방기념탑석실에도 합방 공로자로서 이름이 기록되었다. 1909년에는 일진회 계열이 설립한 대한노동회의 회장을 지냈으며, 1913년에는 천도교 계열의 신흥종교로 이용구가 창시한 시천교(侍天敎)의 포덕사(布德師)를 역임하였다.
사후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06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친일단체 부문)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