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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정치인)

김준태(金濬泰, 1915년 9월 5일 ~ 1987년 10월 1일)는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제2대·제5대·제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부흥부 정무차관을 지냈다.

생애 및 학력

김준태는 1915년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출생했다. 대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립 신경대동학원(新京大同學院)에서 수학했으며,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률연구소를 수료했다. 1939년 7월 조선변호사 예비시험에 합격했고, 1943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후 만주국 국무원 사무국에서 근무했다. 이후 대한민국 국방대학교에서 행정학사(1기)를 취득했다.

법조 경력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활동했다. 검사 경력과 더불어 이후 변호사로도 활동했다. 1962년에는 이주당(二主黨)계 반혁명 음모사건으로 기소된 장면 전 국무총리의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다. 만년에는 법률사무소를 개업해 변호사로 근무하면서 국궁(國弓) 동호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치 경력

김준태의 정치 경력은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북도 청도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시작되었다. 1953년 2월에는 국회 인권옹호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했다. 한편 6·25 전쟁 중에는 조병옥 내무부 장관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던 이력이 있다.

1954년 제3대 및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1958년 민주당에 입당해 감찰부장에 임명되었고, 청도군 당위원장직도 겸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청도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제5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원내부총무 및 감찰위원장직을 수행했고, 3·15부정선거를 계기로 제출된 부정선거 및 부정축재자 처단, 반민주행위자의 공민권 제한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헌법개정안의 공동 발의에 참여했다.

1961년 1월 장면 정권의 제2차 개각에서 부흥부 정무차관으로 임명되어 1961년 5월 20일까지 재직했다.

1963년 6월 자유민주당 창당 발기준비위원회에 참여한 후 자유민주당의 정책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민주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겨 당무위원에 임명되었다. 1963년 11월 실시된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경산·청도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원내부총무, 당무위원, 중앙상임위원,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64년 1월 민주공화당 절량위기극복위원장, 1965년 9월 민주공화당 당기위원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사망

김준태는 1987년 10월 1일(일부 자료에는 10월 4일로 기록)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역대 선거 결과

  •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청도군, 무소속, 당선
  •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청도군, 무소속, 낙선
  •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청도군, 민주당, 낙선
  •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청도군, 민주당, 당선
  •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경산군·청도군, 민주공화당, 당선

평가

김준태는 일제강점기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법조인 출신으로, 해방 이후 검사, 국회의원, 정무차관, 변호사 등을 두루 역임한 대한민국의 재야·여당 정치인이었다. 특히 민주당 시절과 민주공화당 시절을 각각 거치며 시대의 정치적 흐름에 따라 정당을 옮겨가며 활동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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