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金裕貞, 1908년 2월 12일~1937년 3월 29일)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다.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강원도 춘천군 신남면 증리(현재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 실레마을에서 아버지 김춘식과 어머니 청송 심씨 사이의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부 증언에 따르면 실제 출생지는 한성부(서울) 종로구 운니동일 가능성도 제기되나, 김유정 본인은 평생 춘천을 고향으로 여겼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잇따라 여의었고, 형 김유근이 가산을 탕진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1929년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였고, 이후 보성전문학교에도 잠시 재학했으나 퇴학당했다. 1932년경 고향 실레마을로 내려가 금병의숙(錦屛義塾)이라는 야학당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벌였으며, 금광 현장에서 일한 경험도 있었다.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당시 《중외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이후 후기 구인회(九人會)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이상(李箱), 안회남, 이석훈 등과 교유하였다. 등단 이후 불과 2년여의 짧은 창작 기간 동안 「봄봄」, 「동백꽃」, 「만무방」, 「금 따는 콩밭」, 「떡」, 「산골 나그네」, 「따라지」 등 30여 편의 단편소설과 수필, 번역소설 등을 남겼다.
김유정 소설의 주요 특징은 농촌과 산골을 배경으로 한 토속적 소재,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문체, 구어체와 방언의 생생한 구사, 그리고 가난하고 순박한 민중들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희극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식민지 현실의 비애와 가난이 깔려 있다는 점에서 해학과 비애의 공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37년 3월 29일, 폐결핵이 악화되어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상산곡리(현재의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에 있던 매형의 집에서 향년 29세로 사망하였다. 사망 20여 일 후 절친했던 소설가 이상(李箱)도 뒤따라 사망하였으며, 두 사람은 1937년 5월 15일 함께 영결식을 치렀다. 사후인 1938년 유고 단편집 《동백꽃》이 세창서관에서 간행되었고, 1968년 《김유정전집》이 출간되었다. 현재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는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되어 있으며, 경춘선에는 그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