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용(金月龍, 1912년 9월 4일 ~ 1975년 6월 18일)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국제심판이다. 1931년부터 함흥·평양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1972년까지 축구 심판으로 활약했으며, 1959년 FIFA에 등록된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심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생애
- 출생: 1912년 9월 4일, 평안북도 정주(현 북한)
- 학력: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오산고등보통학교(현 오산고등보통학교) 졸업
선수 경력
- 1931 ~ 1933: 함흥 축구단, 평양 축구단에서 활동
- 1937년 전조선 축구대회 결승골로 팀 우승에 기여
- 1938년 동광 축구단 소속으로 또다시 우승을 주도
- 1938년 3지방대항축구전(서울·평양·함흥)에서 함흥 축구단 우승에 기여
심판 경력
- 한국전쟁 후(1953 ~ 1972): 국내외 각종 축구 경기의 주심을 맡음
- 주요 경기
- 1955년 멜버른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 선발전 주심
- 1955년 한·중 친선 경기, 1956년 한국·필리핀 친선 경기 주심
- 1961년 브라질 프로팀 마드레이라와 한국 대표팀(서울팀) 내한 경기 주심
- 1962년 한·일 대학축구대회, 1963년 제5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 국제심판
- 국제심판 등록: 1959년 FIFA에 의해 국제심판 7인에 포함,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심판으로 활동
후반기 및 사망
- 1972년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연예인 축구대회 참석 중 고혈압으로 쓰러진 뒤 투병, 1975년 6월 18일 서울에서 별세하였다.
평가 및 유산
김월용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축구 선수와 심판 양쪽에서 활약한 드문 인물이다. 특히 1959년 FIFA 국제심판 등록은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에 진입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으며, 그의 경기 운영 능력과 공정성은 당시 국내외 축구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생애는 한국 축구 심판 제도의 초석을 다진 사례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