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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우 (1912)

김용우(金用雨, 1912년 4월 29일~1985년 9월 13일)는 대한민국의 정치인 겸 체육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명은 재용(在用), 아호는 삼농(三儂)이다. 일제강점기 경성부(現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하였다.

학력 및 초기 경력

1930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연희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를 마쳤다.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1939년 서던캘리포니아대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서울시장 고문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후 서울시 후생국장, 중앙기술교육위원회 사무총장, 조선주택영단(주택영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정치 경력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시 서대문 갑구에 무소속으로 입후보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국회 사무총장에 취임하였고, 1955년 국방부 차관, 1956년 제6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957년 주영국 초대 대사로 임명되었다. 1958년 제네바 국제해양법회의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영해 문제에 관한 미국안에 반대표를 던진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의원면직이 아닌 해임 처리되었다.

1959년 대한반공청년단 단장을 지냈으며,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하여 당무위원과 정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에는 동양방송(TBC, 현 KBS 2TV) 설립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체육 및 단체 활동

1968년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을 거쳐 1969년 총재가 되었다. 세계 스카우트 운동에서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브론즈 울프(Bronze Wolf)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71년 대한체육회 회장과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였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재임하며 남북적십자회담에 관여하였다.

사망 및 평가

1985년 9월 13일 서울에서 타계하여 국립서울현충원 유공자묘역에 안장되었다. 제2대 국회의원, 제6대 국방부 장관, 주영국 초대 대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인물로서, 정치·외교·체육 분야에 걸쳐 폭넓게 활동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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