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金龍植, 1910년 6월 8일 ~ 1995년 5월 31일)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활약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그는 주로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뛰었으며, 한국과 일본 양국 대표팀에서 활약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이다.
초기 생애
- 1910년 6월 8일, 현재의 대한민국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 일본 유학 중 동경 제국대학(현 도쿄대학교) 축구부에 입단하여 대학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선수 경력
- 일본 대표팀: 1936년 아베르타스 경기에서 일본 대표로 선발되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 한국인 선수가 일본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드문 사례였다.
- 대한민국 대표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결승전에서 득점은 없었지만 수비조직을 이끌었다.
클럽 경력
- 동경 제국대학(1931~1937): 대학 팀에서 활약하며 일본 대학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 연세대학교(해방 후): 한국 귀환 후 연세대학교 축구부에서 코치 겸 선수로 활동했다.
지도자 경력
-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 축구협회에서 코치 및 기술 고문으로 일했으며, 1960년대 초에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보조 코치로 활동하였다.
- 1962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하는 데 전략적인 조언을 제공했다.
사망 및 유산
- 1995년 5월 31일, 서울특별시에서 사망하였다.
- 김용식은 한국 축구 초기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업적은 한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어 있다.
참고 사항
- 제공된 내용은 공개된 사료와 기존 백과사전(예: 위키피디아) 등에 기초한 정보이며, 확인된 사실에 한정하여 서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