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기(金礪器, 1590~1644)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자는 희숙(熙叔)이다. 할아버지는 참봉 김홍진(金洪振)이며, 선대가 철산으로 유배된 것이 계기가 되어 대대로 그 지역에서 거주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철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후금군과 여러 곳에서 교전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이 공으로 조정에서 당상계(堂上階)에 올라 미곶진첨절제사(彌串鎭僉節制使)에 임명되고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청성진첨절제사(淸城鎭僉節制使)로서 웅골성(熊骨城)에서 청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였다. 이후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의 추천으로 명나라로부터 유격(遊擊)에 임명되고 은패(銀牌)를 받았다.
조청 간에 화의가 성립된 뒤 평안도 철산의 가도(椵島)에 잔류한 명군을 토벌하기 위해 청나라가 군사를 징발하자, 그는 중영장(中營將)으로서 임경업(林慶業)의 휘하에 있었다. 1641년 벽동군수(碧潼郡守), 1642년 선천부사(宣川府使), 1644년 선사포첨절제사(宣沙浦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1644년 임경업이 명나라와 밀통한 사건에 연루되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사후 1707년(숙종 33) 호조판서에 추증되었고, 1736년(영조 12) 철산에 정문(旌門)이 세워졌으며, 철산의 충무사(忠武祠)에 제향되었다.
주요 참고 자료로는 《인조실록》, 《철산읍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