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미산(金須彌山, 생몰년 미상)은 남북국시대 신라의 관리이다. 이름의 '산(山)'은 산(山岳)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명에 포함된 한자로, '수미산(須彌山)'이라는 이름 자체가 불교의 세계관에서 우주 중심에 있다고 전해지는 산의 이름에서 유래한 인명이다. 따라서 현대의 지명이나 산 이름과는 관계가 없다.
개요
김수미산은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의 귀족으로, 관등은 사찬(沙飡) 또는 일길찬(一吉飡)으로 기록되어 있다. 출생지와 사망 시점, 가계 등에 대해서는 사료상 알려진 바가 없다.
생애와 활동
670년(문무왕 10)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고구려 부흥 운동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그해 6월, 고구려의 수림성(水臨城) 대형(大兄) 검모잠(劍牟岑)이 고구려 유민을 규합하여 당나라의 관리를 살해하고, 고구려 보장왕(寶臧王)의 서자 안승(安勝)을 맞아 임금으로 삼았다. 이후 소형(小兄) 다식(多式) 등을 신라에 파견하여 번병(藩屛)이 되어 충성을 다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문무왕은 그해 8월 김수미산을 보내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정식 책봉하게 하였다. 김수미산은 왕명을 받들어 안승에게 고구려 선왕의 정통 후계자임을 확인하고, 유민을 어루만져 모으고 옛 왕업을 이어갈 것을 명하였다. 또한 쌀 2,000석, 갑구마(甲具馬) 1필, 능(綾) 5필, 견세포(絹細布) 각 10필, 면(綿) 15칭(稱) 등을 하사하였다. 이후 안승은 674년(문무왕 14) 보덕왕(報德王)으로 다시 책봉되었고, 그가 세운 국가는 보덕국(報德國)으로 불렸다.
관등 기록의 차이
김수미산의 관등에 관해서는 사료 간 기록 차이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본문에서는 "사찬(沙飡) 수미산을 보내어 안승을 봉하여 고구려왕으로 삼았다"라고 기록된 반면, 같은 책의 책명문(冊命文)에서는 "일길찬(一吉飡) 김수미산 등을 보내어 공으로 고구려왕으로 삼는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그의 실제 관등이 사찬이었는지 일길찬이었는지는 학술적으로 명확히 확정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수미산」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