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金成植, 1908년~1986년 1월 24일)은 대한민국의 역사학자이다. 호는 약전(藥田)이며, 서양사 연구를 통해 한국에 서양사학의 기틀을 다진 선구자로 평가된다.
생애
김성식은 1908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향리의 일신학교(日新學校)를, 1924년 평양 숭실학교를, 1930년 일본 센다이시[仙台市]의 도호쿠학원[東北學院]을 졸업하였다. 1935년 3월 일본 규슈대학(九州大學) 법문학부에서 서양근대사를 전공하고, 평양 숭실학교의 교원이 되었다. 그러나 1938년 학교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절하여 폐교되자 해임되었고, 이후 7년간 가업에 종사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민족주의 이론의 체계화에 몰두하였으며, 1945년 광복과 함께 월남하였다. 1946년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1973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재직하였고, 1974년 명예교수로 위촉되었다. 이후 경희대학교 특별명예교수직도 겸임하였다.
학문 활동 및 사회 참여
김성식은 서양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한국에서 서양사학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생을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민족주의자·교수·인도주의자로서 '영원한 대학인'으로 칭송받았다.
4·19 혁명 당시에는 전국 대학교수 258인의 가두시위를 주도하였으며, 4·18 의거 현장에서 제자들의 피를 목격하고 교수시위 참여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5년에는 한일협정 비준 반대 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정부 비판에 나섰다. 이로 인해 '정치교수'라는 낙인을 찍혀 1965년 9월부터 1968년 2월까지 해직교수 생활을 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에도 여러 저서를 남겼다.
저서
주요 저서로는 『대학사(大學史)』, 『독일학생운동사』, 『역사와 현실』, 『루터』, 『내가 본 서양』, 『안정의 논리』, 『역사의 언덕에 서서』, 『역사와 우상』이 있다. 유고집으로는 『김성식정치평론, 쓴소리 곧은소리』(동아일보사, 1986)가 있다.
사망
1986년 1월 24일, 원고를 집필하던 중 노환으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