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권은 대한민국에서 여러 분야의 인물들이 공유하는 이름으로, 동명이인이 다수 존재한다.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1. 기업인 김성권 (1954~ )
1954년 1월 26일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전주 신흥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극동건설에 입사하여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에서 근무했고, 이후 미국계 철강회사 BMTC WICKE에서 구매업무를 담당했다. 1989년 철강 구조물 생산업체인 중산정공을 설립하였고, 이후 사명을 씨에스윈드(CS Wind)로 변경했다. 2000년대 초반 풍력발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주목하고 풍력발전타워 사업에 진출하여, 씨에스윈드를 글로벌 풍력발전타워 제조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씨에스윈드는 미국, 베트남, 중국, 영국, 포르투갈, 덴마크, 터키, 말레이시아, 대만 등 8개국 이상에 생산 법인을 두고 있으며, 베스타스(Vestas), 지멘스가메사(Siemens Gamesa), GE 등 글로벌 풍력터빈 제조사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2024년 3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였으며, 현재 씨에스윈드 회장 및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슬하에 1남1녀가 있으며, 아들 김창헌은 씨에스베어링 대표이사, 딸 김승연은 씨에스윈드 전무로 재직 중이다.
2. 독립운동가 김성권 (1875~1960)
1875년 2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1904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이민한 후, 1905년 강영소 등과 함께 에와친목회를 결성하고 항일운동과 일화배척 운동을 전개했다. 1907년 하와이 한인단체 통합운동을 주도하여 한인합성협회를 창립했고, 1908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안창호의 공립협회에 가입했다. 1909년 미주 한인의 최고 통일기관인 대한인국민회(국민회) 창립에 기여했다. 1913년 강혜원과 결혼하였고, 1919년 3·1운동 직후 흥사단에 가입하여 평생 흥사단 활동에 헌신했다. 1940년대에는 조선민족혁명당 미주지부 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1960년 1월 2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별세하였으며, 200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부인 강혜원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3. 독립운동가 김성권 (1922~2007)
1922년 1월 21일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청산(淸山)이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이던 1941년 2월 15일, 권쾌복, 김효식 등 동급생들과 함께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였다. 다혁당은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독립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역사·문화 서적을 돌려보고 독후감을 발표하는 등 학술 활동과 군사훈련을 병행했다. 1941년 여름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고,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45년 8월 광복 후 출옥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으며, 2007년 5월 31일 사망하였다. 묘소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
4. 의학자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신장내과 교수로 35년간 재직하였으며,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 대한신장학회 이사장, 국제신장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사구체신염, 루푸스신염 등 콩팥병 분야에서 높은 완치율을 기록하였으며, 2014년 아시아태평양신장학회 로스 베일리 상을 수상했다. 정년퇴임 후 서울 종로구에 서울K내과를 개원하였고, 저염식 실천 운동을 전개하는 '싱겁게먹기실천연구회'를 설립하여 활동 중이다. 저서로 『소금중독 대한민국』, 『김성권 교수의 건강편지』 시리즈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동명이인이 더 존재할 수 있으나, 이상의 인물들이 공신력 있는 출처를 통해 확인되는 주요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