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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 할복 사건

정의

김상진 할복 사건은 1975년 4월 11일, 서울대학교 농과대학(당시 수원 캠퍼스)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상진(金相眞, 1949~1975)이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자유성토대회 연단에서 양심선언문을 낭독한 후 과도로 할복(복부를 자르는 자결)한 사건이다. 이는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역사상 최초의 학생 열사(烈士)로 기록된다.

인물 개요

김상진은 1949년 11월 25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68년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1학년 시절 농과대학의 이념 서클 '한얼'에 가입하여 문학과 사회사상 관련 독서와 토론을 통해 사회 비판적 시각을 키웠다. 1971년 가을 휴학 후 군에 입대하였고, 1974년 제대 후 4학년으로 복학하였다.

사건 경과

1975년 4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학생들은 학원 자율화 문제와 언론 자유 문제를 제기하며 학생 총회를 개최하고 수원 시내까지 진출하여 게릴라식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총학생회장과 체육부장 등이 체포되자, 4월 11일 농과대학 학생들은 구속 학생 석방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서 김상진은 세 번째 연사로 등장하여 양심선언문을 낭독한 후, 품에 지니고 있던 약 20cm 길이의 과도로 할복하였다. 그는 수원 도립병원으로 이송되어 두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다음 날인 4월 12일 오전 8시 55분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되는 구급차 안에서 사망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양심선언문의 내용

김상진이 할복 직전 낭독한 양심선언문과 사전에 작성한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에는 자유와 민주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그는 유신헌법을 "합법을 가장한 독재"이자 "일체의 정치적 자유를 질식시키는 공포의 병영국가"라고 비판하며,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을 것"이라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사건의 여파

김상진의 할복 자결 소식은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을 격화시켰다. 사후 10일이 지난 4월 22일,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민주회복국민회의 주도로 추도식이 거행되었다. 이에 박정희 정권은 1975년 5월 13일 유신체제 마지막 긴급조치인 제9호를 발표하여 모든 집회와 시위, 유신헌법에 대한 비방 행위를 전면 금지하였다.

그러나 5월 22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 1천여 명의 학생이 모여 '김상진 열사 추도식'을 거행한 후 긴급조치 9호 철폐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로 인해 서울대학교 총장이 사임하고 치안본부장, 서울남부경찰서장 등이 경질되었으며, 29명의 학생이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오둘둘 사건'으로 불린다.

사후 평가와 추모

유신체제 당시 정권의 탄압으로 장례식이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으나, 1980년 4월 11일(사후 5년)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정에서 정식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1988년 11월, 김상진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고 서울대학교 수원캠퍼스에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1995년 4월 11일에는 평전 『긴 겨울 얼음을 뚫고』가 발간되었다. 2001년 제8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가로 공식 인정되었으며, 2002년 2월 26일 서울대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이 수여되었다. 2025년 현재, 김상진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추모사업이 지속되고 있으며, 2025년 4월 11일에는 의거 50주기 추모제가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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