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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 (1561년)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이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수(景受), 호는 석주(石洲)이다. 김극일(金克一)의 증손이며, 김응태(金應泰)의 손자이고, 김홍우(金弘禹)의 아들이다.

1589년(선조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159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가 되었다. 이후 예조·병조·형조의 좌랑, 정랑, 지평, 수찬, 교리, 응교, 사인, 집의, 직제학, 대사성, 부제학, 대사간, 도승지, 이조참판, 한성부우윤, 좌윤, 공조참판, 병조참판, 이조참판, 예조판서,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지춘추관사, 동지의금부사, 좌참찬, 우참찬, 판돈녕부사, 지의금부사, 지경연춘추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지경연춘추관사, 좌참찬, 우참찬, 판돈녕부사 등을 지냈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 강화도 수비에 참여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으며, 성이 함락되자 자결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이듬해 풀려나 돌아왔다. 귀국 후 판중추부사, 영돈녕부사 등을 지내고 1637년(인조 15)에 졸하였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저서로는 《석주집(石洲集)》이 있으며, 시문과 충절로 이름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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