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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량

김사량(金史良, 1914년 3월 3일 ~ 1950년)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활동한 소설가이자 희곡 작가이다. 본명은 김시창(金時昌)이며,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일본어와 조선어 두 언어로 창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재일 한인 문학의 효시로 평가된다.

생애

김사량은 부유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1년 평양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 중 일본군 배속장교 배척운동을 주도하다 퇴교당하였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가고등학교(佐賀高等學校)를 거쳐 1939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독일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36년 동인지 『제방(堤防)』을 발간하여 일본어로 쓴 처녀작 「토성랑(土城廊)」을 발표하였고,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던 중 사상 문제로 경찰에 검거된 바 있다.

1940년 재일 조선인 교사와 조일혼혈(朝日混血) 소년의 정체성 찾기를 그린 단편소설 「빛 속에」(빛 속에서)로 조선인 최초로 일본 아쿠타가와상(芥川賞) 후보에 올랐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다음날 사상범예방구금법에 의해 50일간 구금되었으며, 일본군의 종군작가 요구를 거부하였다.

1943년 귀국 후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독어교사로 부임하였다. 1945년 일제 학도병 위문단원으로 중국에 파견된 틈을 타 연안(延安)으로 탈출, 조선의용군에 입대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르포르타주 「노마만리(駑馬萬里)」는 르포문학의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1945년 해방 후 북한으로 돌아와 북조선예술가총연맹 국제문화부 책임자 등 문화예술 조직에서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6·25전쟁) 발발 후 종군작가로 참가하였으나, 인민군 1차 후퇴 당시 강원도 원주 부근에서 심장병으로 낙오하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학적 특징과 평가

김사량은 일본어와 조선어를 모두 창작 언어로 사용한 이중언어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식민지 조선인의 정체성, 민족의식, 억압된 현실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을 보인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소설 「빛 속에」, 「유치장에서 만난 사나이」, 「천마」, 「향수」, 장편소설 「낙조」, 「태백산맥」, 희곡 「호접」, 르포 「노마만리」 등이 있다.

남한에서는 월북 문인이자 일본어 창작 작가로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이중언어 문학과 탈식민주의 문학 이론의 관점에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북한에서는 연안파(비김일성계)로 분류되어 문학사에서 삭제되었다가 1987년경 복권되었으며, 2013년 북한 전승기념일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추서받았다. 재일 한인 문학계에서는 효시적 작가로 지속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후

2005년 중국 후자좡(胡家庄) 마을 입구에 김사량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그의 작품은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에서도 번역·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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