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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

김부식(金富軾, 1075년~1151년)은 고려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역사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입지(立之), 호는 뇌천(雷川), 시호는 문렬(文烈)이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증조부 김위영(金魏英)이 고려 태조에게 귀의하여 경주 지역의 주장(州長)에 임명되면서 가문이 형성되었다. 아버지 김근(金覲)은 과거를 통해 예부시랑·좌간의대부에 올랐으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고, 김부식은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그의 이름과 형제들의 이름은 송나라 문호 소식(蘇軾) 형제의 이름을 본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96년(숙종 1) 과거에 급제한 이후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 사록(司錄) 등을 거쳐 직한림(直翰林)에 발탁되었고, 이후 20여 년간 한림원 등 문한직에 종사하며 학문을 발전시켰다. 1116년(예종 11)에는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이후 어사대부·추밀원부사·호부상서·한림원학사 등을 거쳐 평장사(平章事)에 올랐다.

인종 집권 초기 외척 이자겸(李資謙)이 국정을 농단할 때 김부식은 일부 비례(非禮)에 반대한 적이 있으나 대체로 묵종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이자겸의 난 이후에는 정치적 지위가 급성장하였다. 1135년(인종 13) 묘청(妙淸)·조광(趙匡) 등이 서경(西京, 평양)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김부식은 원수(元帥)로 임명되어 출정하였고, 1년 2개월 만에 반란을 진압하였다. 이 공으로 수충정난정국공신(輸忠定難靖國功臣)에 책봉되고 문하시중에 올랐다.

이후 인종의 명을 받아 정습명(鄭襲明), 김효충(金孝忠) 등과 함께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을 편찬하였으며, 1145년(인종 23)에 완성되었다. 《삼국사기》는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관찬(官撰) 역사서로, 삼국 시대의 역사를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입각하여 기록한 정사체(正史體)의 역사서이다. 김부식은 이 외에도 《예종실록》과 《인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142년 관직에서 물러난 후, 1151년(의종 5) 77세로 사망하였다. 중서령(中書令)에 추증되었고 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문집 20권을 남겼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으며, 일부 글이 《동문수》와 《동문선》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김부식을 "박학강식(博學强識)해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학사의 신복을 받으니 능히 그보다 위에 설 사람이 없다"라고 평가하였다.

김부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국 고대 사학을 합리적 유교사관으로 발전시킨 공로를 높이 평가하는 견해가 있는 반면, 근대 역사학자 신채호(申采浩)는 그가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서경 세력의 독자적이고 진취적인 기운을 꺾었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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