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김녹영

김녹영(金祿永, 1924년 12월 8일~1985년 7월 10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호는 백우(白愚)이며, 본관은 울산이다.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생애와 경력

김녹영은 광복 직후 정치에 입문하여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49년에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전라남도 조직부장에 선임되었으며, 1952년에는 목포일보 광주분실장으로 언론계에 종사하기도 했다. 최종학력은 전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1971년)이다.

1953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상무위원직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일생을 반독재 투쟁에 헌신한 야당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주요 약력으로 1959년 신민당 상무위원, 1960년 4·19혁명동지회 지도위원, 1971년 민주통일당 대변인, 1974년 민주통일당 정책위원회 의장, 1979년 민주통일당 부총재, 1985년 신한민주당 창당발기인 등이 있다.

의정 활동

김녹영은 제8대(1971년), 제9대(1973년), 제10대(1978년), 제12대(1985년) 국회의원을 지낸 4선 의원이다. 제8대 국회에서는 신민당, 제9·10대 국회에서는 민주통일당, 제12대 국회에서는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제5공화국 출범 당시 「정치풍속규제법」(정치규제법)에 묶여 일시적으로 제도권 정치활동이 중단되었으나, 1984년 규제 해제 이후 광주 서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의정활동을 재개했다.

1985년 제12대 국회에서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국회부의장 재직 중이던 같은 해 7월 10일, 지병인 심장병(일부 자료에서는 췌장암으로 기록) 치료차 일본에 갔다가 일본 도쿄에서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나이 60세였다.

평가 및 유산

김녹영은 4·19 혁명 시기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앞장서다 부상한 이력이 있으며, 유신헌법 개정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다 탄압을 받기도 했다. 숨을 거둘 때까지 광주민주화운동(5·18) 진상규명을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의 시신은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2024년 1월에는 김녹영의 자녀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사실이 보도된 바 있다. 저서로는 『형극의 길』(1974)이 있다.

둘러보기

더 찾아볼 만한 주제

    전체 문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