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金基瀅, 1884년 1월 1일 ~ 1963년 5월 19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김녕(金寧)이며, 호는 송암(松巖)이다.
생애
김기형은 1884년 1월 1일 경기도 양주에서 김학진(金學鎭)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웠으며,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주요 활동
귀국 후에는 보성전문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교육 활동에 힘썼다. 1907년에는 안창호, 이회영 등과 함께 비밀결사 신민회에 참여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1920년 조선교육회 창립에 참여했으며, 1922년 동아일보 창간 발기인 및 이사,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언론을 통한 계몽운동에 주력했다. 또한 여러 사립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며 민족 교육에 헌신했다. 1938년에는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다시 투옥되는 등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에 몸바쳤다.
해방 이후
해방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며 건국 준비 활동에 참여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대한민국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 이후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의정 활동을 이어갔다.
사망 및 서훈
김기형은 1963년 5월 19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같이 보기
- 신민회
- 105인 사건
- 동아일보
- 제헌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