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金琪洙, 1917년 11월 22일~1986년 10월 21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대금 연주자이자 신국악(新國樂) 작곡의 선두자이다. 아호는 죽헌(竹軒)이며, 순한국어로 풀어 '대마루'라고도 불렸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서울 체부동에서 태어났다.
1931년부터 1936년까지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에서 대금을 전공하였고, 1936년부터 이왕직아악부에서 아악수(雅樂手)로 근무하였다. 1939년 이왕직의 신곡 공모에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으로 당선되었고, 1941년에는 사중병주곡(四重並奏曲) 「세우영(細雨影)」을 창작하여 획기적인 창작 국악곡으로 평가받았다.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사, 장악과장, 악사장 등을 역임하였고, 1972년 국립국악원장, 1977년 국립국악고등학교 교장을 지냈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1호 종묘제례악,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독주곡, 관현악곡, 무용음악, 의식음악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전통 음악 악보를 채보하고 정간보(井間譜) 기보법을 정리하여 현재까지 사용되는 체계를 마련하였다. 또한 『국악입문』, 『대마루108』, 『대마루66』 등 다수의 교재와 이론서를 저술하여 국악 교육의 기틀을 세웠고, 한국 전통 악기의 개량 및 복원 사업에도 기여하였다. 대표작으로 「개천부(開天賦)」(1952), 「송광복(頌光復)」(1952) 등이 있다.
1954년 서울시문화상 음악부문, 1962년 대한민국 면려포장, 198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 천황을 칭송하는 내용의 「황화만년지곡」을 작곡한 사실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음악인 부문에 포함되었다. 국립국악원에는 그의 호를 딴 '죽헌실'이라는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동상공원에 흉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