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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성

김극성(金克成, 1474년 8월 10일 ~ 1540년 5월 20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성지(成之), 호는 청라(靑蘿) 또는 우정(憂亭)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주정(金周鼎)의 7대손이며, 아버지는 진사 김맹권(金孟權), 어머니는 전삼달(全三達)의 딸이다.

1496년(연산군 2) 생원시에 장원하였고, 1498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에 임명된 후 종학사회(宗學司誨)를 겸하였다. 1500년에는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북평사(北評事)가 되었으며, 이후 헌납(獻納)에 발탁되었다. 연산군에게 충심으로 간언하다가 화를 입을 뻔하였으나, 이후 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중종반정 이후에도 관직에 나아가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평가된다. 시문에도 능하여 「우정 김극성의 삶과 시세계」 등 학술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묘소는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으며, 신도비(神道碑)가 남아 있다. 사망 연도는 1540년(중종 35)이며,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문헌을 통해 그 행적이 상세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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